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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왕 Mar 02. 2019

불완전할 수밖에 없던, <케빈에 대하여>

1. 린 램지

아들을 사랑하는 척했던 엄마, 
그리고 엄마를 사랑하지 않은 척했던 아들의 이야기


누군가 적어놓은 영화에 대한 설명이다.

2시간이 넘는 영화의 이야기는 정확하게 누군가 적어놓은 두 줄로 압축된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다뤄졌던 엄마와 아들,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 자비에르 돌란의 <마미>, 더 나아가선 이창동 감독의 <시>까지 모두 자식에 대한 사랑에 관한 영화다.(물론 <시>는 엄마와 자식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너무나 다르다. 


<케빈에 대하여>는 에바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에바는 아이를 원치 않는 듯 보인다. 육아보다는 자신의 일이 더 중요하고 오롯이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케빈'이 에바에게는 어쩌면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일지 모른다. 



케빈 역시 갓난아기일 때부터 조금 유별나다. 시종일관 울음을 멈추지 않는 탓에 에바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나이가 들어서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역시 에바의 속을 썩인다. 물론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케빈은 이런 행동은 어리기 때문이 아니다. 아빠인 프랭클린 앞에서는 전혀 문제 되는 행동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영리하고 친근하게 관계를 유지한다. 케빈은 유독 엄마인 에바 앞에서만 적대적이고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케빈은 나이가 들수록 엄마인 에바를 일부러 더 곤란스럽게 하고 괴롭힌다. 

에바는 케빈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에바가 케빈을 대하는 태도가 진심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영화 속에서 두 모자가 공원 산책을 하고 저녁을 함께 먹으며 모처럼 둘 만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 안에서 에바는 케빈과 함께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웃지 않으며 도리어 짜증 섞인 표정으로 시간을 보낸다.

에바는 그저 의무감으로 케빈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듯 보인다. 결국 둘의 관계는 나아지지 않고 평행선을 이루며 흘러간다.  그리고 둘째인 딸 실비아가 태어나면서 에바와 케빈, 모자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둘의 갈등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케빈은 충격적인 사건을 저지르고 만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들을 상대로 대량 살인을 저지르고 아버지와 자신의 동생마저 죽인다.

이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영화는, 과연 케빈과 에바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관객에게 물음을 던진다.


 


끊임없이 사고를 치고 문제를 일으킨 것도 '이렇게까지 해도 나를 사랑할 수 있어?'란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함이었을 수 있다. 


에바는 케빈이 일으킨 문제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은 적이 없다. 충격적인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야 에바는 케빈에게 처음으로 질문한다. 


 -Why?(왜 그랬니?)
 -I used to think I knew. Now I'm not so sure.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모르겠어)

에바가 케빈에게 왜냐고 묻는 순간 케빈 역시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케빈이 처음부터 바라던 것은 어쩌면 에바의 솔진 한 감정,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이었을 것이다.



케빈은 과연 태어나면서부터 악인(사이코패스)였던 것인지 혹은 서툰 에바의 양육방식이 그를 악인으로 만든 것인지 분명하진 않다. 그러나 선후관계가 어찌 되었든 간에 분명한 것은 케빈은 엄마 에바의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을 바랐다는 사실이다.  만약 케빈의 잘못에 대해 에바가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솔직한 감정을 보여줬다면 이야기는 이렇게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은 준비되어 있지 않던 에바, 그리고 그것을 기다릴 수 없었던 케빈. 거대한 비극의 시작은 아주 작은 관계의 삐걱거림에서 시작된 것이다. 


단순히 이 영화를 사이코패스를 둔 부모의 이야기 정도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의 원제는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이다. 직역하면 '우리는 케빈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정도가 될 것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알아가고 인연을 맺기 위해선, 그리고 그 관계가 불완전하지 않기 위해선 현실의 '케빈'들이 끊임없이 대화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를 영화 <케빈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방적인 관계는 불완전하다.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솔직하지 못하고, 진정성이 결여된다면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부모와 자식뿐 아니라, 남과 여, 혹은 친구 사이일지라도. 

사랑하는 척하려 했던 에바와 사랑하지 않은 척했던 케빈처럼, 관계에 커다란 결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케빈'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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