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이 필요한 순간

취향을 지키는 방법

by 유케이

얼마 전 셔츠가 필요함에 오랜만에 목적이 분명한 쇼핑을 하였다. 사실 얼마 전까지 시즌 세일기간이라 목적 없는 쇼핑을 계속하였는데 별 소득은 없었다. 필요한 것은 얇은 긴팔 코튼 셔츠. 세일기간엔 생각도 안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는 바람에 세일 막차를 타기 위해 분주해졌다. 먼저 접근성 좋은 오프라인 SPA브랜드들부터 살펴봤지만 시즌아웃과 신상품이 뒤섞여있는 분위기 속에서 마음에 드는 걸 찾지는 못했다.


온라인에서 디깅을 시작했다. 생각만큼 다양하고 방대한 셔츠가 검색이 되었고 오프라인에서는 볼 수 없는 저렴한 가격대와 다양한 상품들이 클릭을 유도한다. 정가와 할인가가 구분되지 않는 가격은 의미가 없어 보였고, 상품에 대한 성의 있는 설명보다는 후기가 많고 판매량이 높은 셔츠를 골라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점점 쌓여간다 썸네일을 통해 괜찮아 보이는 상품에 후기가 없다면 자연스레 뒤로 가기를 누르게 되었다.


단기간 정말 많은 셔츠를 봤지만 딱히 원하는 걸 찾지 못했다. 디깅을 하면 할수록 생각하고 찾고 있던 코튼셔츠는 점점 흐려지고 왠지 트렌드에 뒤처질 것만 같은 생각이 가스라이팅 당하듯 슬면서 생각을 바꿔갔다. 누군가 알려준 것이 아니지만 이왕 셔츠가 필요한 거면 요즘 트렌드를 따르면서 패피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셔츠를 사야지 만족할만한 쇼핑이 될 것 같은 생각까지 가게 되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정보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가공된 척 접근한다. 디깅 하면 할수록, 원하던 원하지 않던 분위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케팅은 넘어갈 수밖에 없다. 확고한 취향이 있다 한들 다수가 트렌드를 만들어 일반화를 시킨다면, 그저 유행에 뒤처진 올드패션이 되거나 취향을 바꾸게 된다.


요즘 패션은 무한에 가깝다. 보세부터 브랜드 명품까지 쉴 새 없이 새로운 아이템들은 쏟아지고 모든 브랜드는 상품보다는 마케팅에 사활을 건다. 또한 이러한 브랜드를 재가공하여 콘텐츠로 보여주는 마케터와 인플루언서까지 생각한다면, 이런 정보를 관통하여 취향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적지않은 투자비용이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조금 거부감이 있었던 큐레이션, 큐레이팅이라는 취향을 모아주는 형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언제부터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것 또한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지배했던 이전날의 생각은 많이 바뀌게 되었고, 이제는 취향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조차도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기만의 취향을 지키기가 어렵고, 이에 수반하는 시간과 에너지 비용 또한 무시할순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큐레이션의 시대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할인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