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객의 이야기를 즉흥연극으로 보여주는 일을 한다. 외로움, 밤에 꾼 꿈이나 마음에 품은 꿈, 돈, 여성으로 사는 것, 청춘의 노래, 어린 시절 등의 주제로 관객들을 만났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즉흥연극을 한다는 건 대화의 연장선이다. 공연은 불완전한 대화가 되기도 한다. 공연을 마치고 나면 다하지 못한 대화가 마음에 남는다. 그 이야기를 글로 조금씩 풀어보려한다.
#노래방에서 1년을 일한 고등학교 3학년, 어느 워크맨의 이야기
여자들이 들어가는 노래방에서 1년 간 일했다. 돈을 못 갚아서 일하게 되었다. 아버지 같은 나이대 손님들이 와서 진상 짓을 하면 그걸 해결하는 일을 했다. 사람같이 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일하기 싫었다. 워크맨은 별 다른 말을 더하지 않았다. 일하면서 그래도 좋았던 건 노래방 누나들이 잘 해줘서라고 한다.
공연이 시작된다. 어찌 저찌 나는 노래방에서 일하게된 워크맨이 되고 노래방에서 일하는 일상이 장면으로 벌어진다. 동료 악사가 만취상태로 누나를 찾는 진상 손님이 되어 무대에 나타난다. 힘으로 진상 손님을 제압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회 생활을 너무나 잘 아는 듯 진상 손님의 비위를 잘 맞춘다. 폭력을 쓰지 않고 실제 잘 구슬려 본 사람만이 이 연기를 잘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그 연기를 하면서 스친다. 능구렁이. 진상 손님은 그렇게 마음이 누그러져 다음에 오겠다하고 나간다.
같이 일하는 누나가 힘들어하는 장면이 동료 배우에 의해 만들어졌다. '누나가 잘못한 거 아니잖아요. 누나는 일을 한 거잖아요.'라고 워크맨이 된 나는 말했다.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유튜브를 봤다. 한 영상에서 '인생이 꼭 행복해야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나왔다. 바로 워크맨이 생각났다. 세상의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웬만해야 쇼펜하우어 말처럼 인생이 왜 행복해야한다고 생각하냐라는 말을 하지.
워크맨에게 인생은 고생하면서 사는 거야라고 말할 수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 공연이 끝나고 워크맨은 공연을 마친 강당을 나서며 나에게 '좋았다, 재밌었다'며 내 손을 힘차게 잡았다. 워크맨과 하이파이브 같은 손인사를 하고 그의 뒷모습에 "워크맨, 행..행복~~"이라고 싱거운 작별 인사를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생각해보니 행복도 빌어주기 어려웠나? 글쎄 주접 같아 워크맨에게 더 말을 걸지 않은 말이 있었다. 내게도 그 날들이 있었어서 내 경험을 떠올리며 극중 노래방 진상손님을 자존심 내려놓고 (힘은 아끼고) 구슬릴 수 있었다고. 사람답게 살지 못하던 그 날들 뒤에 난 누구든 조금 더 사람답게 대할 줄 알게 된 걸까. 나로서 살아갈 방도는 찾은 것 같다고.
벌써 여러 일들을 겪고 그 다음을 살아가는 워크맨, 우린 해내면서 살아내고 있나봐. 반가웠어.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