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사랑이 희생이라 말하지만, 사랑은 희생이 아니다.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줄 알았다. 생각해 보면 나를 좀 더 아꼈어야 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누군가에게 학대당했다면 나는 용서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자신을 먼저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아야, 가족을 위해 책임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아내와 함께 했던 7년의 대가는 컸다. 자존감은 바닥을 기고 있었고, 유일한 취미인 카메라가 눈앞에 놓여 있어도 셔터를 누르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좋았던 것들은 잃어버리고, 해로운 것만 잔뜩 남았다. 훌쩍 커버린 두 딸아이를 바라보면 우리는 제법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것 같은데, 남은 건 아내의 빈자리와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 우울증 뿐이다.
그동안 브런치에 경계성 인격장애글을 발행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도 좀 즐겁게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아픔을 회상하며 글을 써내려 가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고갤 흔들어 지우려 해도 그때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브런치에 접속조차 하지 않았다.
그동안 쓴 몇 개의 글들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나 보다. 자신 역시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거나, 소름 돋게 똑같은 일들이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다는 메일들이 간간히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자 원고지 기준 10장이 족히 넘어 보이는 장문의 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나와 그들의 공통점을 보면 한결같이 이혼은 피하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여자와 이혼을 한 경험자로써 전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다.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요즘 겨울산, 그것도 일출 등산을 하며 나를 사랑하는 방법들을 터득해가고 있다. 심지어 좋아하는 카메라 셔터를 다시 누르고 있다. 메일을 통해 간간히 고민을 이야기하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브런치에 다시 글을 발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아직 발행하지 못한 임시글이 꽤 쌓여있다. 대부분 가슴 아픈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몇 줄이 전부다. 용기를 내어 다시 이어가 보려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당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