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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릴리스(2007)

나의 욕망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면

by 안진

2020년 8월 13일 영화관에서 관람하고, 2020년 8월 16일 첫 번째 글을 씀. 한 영화를 보고 쓴 두 글을 합치는 수정 작업은 2021년 2월 7일에 함.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인터뷰에서 "세 소녀는 10대 시절 나 자신을 흔들었던 세 가지 고민을 각각 반영했다."라고 했다. 영화를 보는 여성들은 분명 세 사람 중 최소한 한 명에게서는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나 또한 영화를 보면서 이제는 그런 과거를 받아들였지만, 한동안 이유도 모르면서 부끄럽기만 했던 16살 즈음의 시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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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타인의 시선에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여성 청소년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만 곪게 되는 그 많은 고민들은, 아직 자신의 신체가 어린애 같다는 것이 싫은 마리, '헤픈 여자애'로 취급받으며 성희롱을 당하고 아직 섹스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플로리안, 아직 내적으로는 성숙하지 못했는데 외적으로는 어른이 되어버려 빨리 첫 키스와 첫 섹스를 하고 싶어 하는 안나처럼 다양한 모습일 것이다. 영화의 소재인 싱크로나이즈드는 그러한 성장기의 여성 청소년의 모습을 비유한 듯하다. 물 위에서 방긋 웃으며 아름다운 동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 아래에서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물 아래의 모습은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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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 사람의 솔직하고 미숙하고 상처 입는 순간들을 담으며 변해가는 그들을 보여준다. 그들이 겪는 성장의 아픔은 싱크로나이즈드처럼 역동적이지만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 성장통의 기억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별일이 아니게 되진 않겠지만,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게 되면서 성장하며 겪었던 일들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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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이런 소재로 10대 여성의 성적인 고민을 다루면서도 성적 대상화를 피해 가고 카메라에 불쾌한 시선이 담기지 않게끔 했다고 한다. 불초상도 그랬지만 그게 가능한 것은 감독이 노력했기 때문이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면서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시선에 불쾌하지 않아 해도 되는 영화가 세상에 적지 않다는 게 기쁘다.



위는 작년 8월 13일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워터 릴리스를 보고 썼던 글이고, 아래는 작년 글쓰기 수업에서 과제로 제출했던 한 페이지짜리 비평문이다. 겹치는 부분도 있긴 한데, 아래의 글은 글 전체에 당시 관심 있었던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성적인 욕망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주제가 담기도록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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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화 <워터 릴리스>가 담아내는 경험과 욕망의 주체인 여성에 대하여


주제 : 남성의 욕망 충족을 위한 전형적인 여성상을 담아내는 영화에서 벗어나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긍정할 수 있는 영화가 필요하다.


주제 선정 이유 : 많은 영화에서 여성은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상화된 모습이거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어머니의 모습이다. 특히, 지금까지의 영화를 포함한 많은 미디어는 여성의 욕망 중에서도 성적인 욕망에 관해 부끄러운 것 혹은 파트너 남성을 위한 것으로 묘사해왔다. 영화는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관객들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영화 <워터 릴리스>에서는 2차 성징을 거치며 처음 성에 대해 인식한 여성 청소년이 타인(남성)의 시선에 의해 사회적으로 요구된 여성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그러한 과정과 결과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세 캐릭터를 통해 성적인 욕망에 대해 고민하는 여성 청소년을 온전히 그들의 시선에서 대상화 없이 담아낸다. 비평문을 통해 <워터 릴리스>에서 욕망의 주체이자 시선의 주인이 되는 여성 캐릭터의 중요성과 긍정적 영향력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영화는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지만, 관객들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영화를 포함해 많은 미디어는 여성을 의지가 있는 인물이 아니라 대상으로서 바라보며, 여성의 성적인 욕망에 관해 부끄러운 것 혹은 파트너 남성을 위한 것으로 묘사해왔다. 그렇게 미디어를 통해 성적 대상화를 경험하는 여성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관점을 내면화하여 자기 대상화를 통해 수치심, 불안, 섭식 장애, 우울증 등을 겪게 된다. (손은정, 2006: 412) 영화 <워터 릴리스>에서는 2차 성징을 거치며 처음 성에 대해 인식한 여성 청소년이 타인(남성)의 시선에 의해 사회적으로 요구된 여성의 모습을 어떻게 내면화하는지 보여준다. 영화 <워터 릴리스>의 셀린 시아마 감독은 세 캐릭터를 통해 성적인 욕망에 대해 고민하는 여성 청소년을 온전히 그들의 시선에서 대상화 없이 담아낸다.


영화의 시점은 관객이 영화의 인물과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영향을 끼친다. 다큐멘터리 감독 계운경은 영화 속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이 남성인 것을 감안한다면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남성이 해석해 놓은 여성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그 모습은 남성 무의식 혹은 남성 판타지 속 여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계운경, 2006: 36)라고 말한다. 여성 감독이 연출했다고 해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늘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셀린 시아마 감독은 카메라의 시선이 관객들에게 주는 영향을 고려하며 세심한 연출을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어린 수중 발레 선수들이지만 관객들은 수영복을 입고 벗는 인물들을 부끄러운 장면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마치 탈의실 안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는 인물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키스를 비롯해 성적인 관계를 맺는 장면들이 나오지만, 흡사 포르노와도 같은 촌스러운 연출 방식이 아니라 여성의 감정, 시선, 생각에 집중한다. 이러한 감독과 카메라의 시선은 관객들이 여성을 스스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상황의 주체로 인식하게 한다.


영화 속 세 주인공, 마리(폴린 아콰르), 안나(루이즈 블라쉬르), 플로리안(아델 에넬)은 개성 있고 입체적인 인물들이면서 동시에 청소년 시기를 보낸 여성들에게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보편적인 인물들이다. 감독이 세 소녀는 10대 시절 자신을 흔들었던 세 가지 고민을 반영했다고 밝힌 것처럼, ‘아직 2차 성징이 오지 않아 어린아이 같은 자신의 몸이 부끄러운’ 마리, ‘키스도 섹스도 잘 모르지만 빨리 성적인 경험을 하고 싶은’ 안나, ‘헤픈 여자애로 취급받아 성희롱을 당하는’ 플로리안을 보고 있으면 여성들은 적어도 한 명에게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여성들은 성장하면서 미디어를 통해 학습된 ‘여성상’의 압박을 받는다. 그러한 만들어진 여성상은 여성들에게 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끄러우니 감춰야 하지만 외모는 열심히 가꾸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는다. 그에 반해 영화 <워터 릴리스>에서는 여성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통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성적인 경험을 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보여주며, 그 여성들은 주체적 서사를 가진 인물임을 분명히 한다.


영화 <워터 릴리스>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제시하는 ‘여성상’에 자신을 맞추고자 경험했던 고통들이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압박이었음을, 자신의 잘못이거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왜곡이었음을 이해하게 한다. 이렇게 현실적인 여성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들이 늘어나 청소년들이 영화를 보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게 되면서 성장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



1) 손은정, 「대상화 경험이 여성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한국심리학회지: 여성』 제11권 제4호, 한국심리학회, 2006.

2) 계운경, 「[영화 읽기] 영화, 그리고 ‘여성의 욕망’」, 『여성우리』 제31호, 부산여성가족개발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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