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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촌에서 하는 일

목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책을 쓰기까지

by 호호동호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지요. 2017년 여름, 저는 평촌 요구르트 배달 일을 제안받았습니다. 그 시절 저는 마을에 견학 오는 분들에게 마을을 안내하는 일을 했더랬습니다. 평촌 요구르트를 매일 접했지만, 제겐 미지의 세계였답니다. 평촌은 막연하게 번듯한 곳이었습니다. 전국으로 유통되는 요구르트라니. 게다가 동네에서 제일 큰 트랙터가 있는 곳이었거든요. 그때 동네 자율방범대에 가입하였는데요. 방범 능력(?)을 인정받아 배달업무 소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공장으로 처음 인사하러 갔던 날은 지금도 생각납니다. 공장이라는 말의 느낌과 다르게 공장은 단순했습니다. 큰 솥이 있고 그 밑에서 요구르트를 한 병 씩 담고 있었습니다. 공장장인 신강수 님과 공장의 처음부터 일하고 계신 주00 님, 역시 같은 동네 주민인 윤00 님이 계셨습니다. 전 직원이 여성인 데다, 초 장기근속인 회사라니. 첫인상은 요구르트만큼 신선했습니다. 요구르트 배달은 오전에 끝났습니다. 대신 휴일이 없었지요. 요구르트 생산량의 대부분이 생협을 통해 나갔습니다. 홍성 관내 배달은 풀무생협과 몇몇 마트, 어린이집에 나갑니다. 좋은 제품을 배달한다는 기분에 거래처 분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배달을 마치고 김연옥 여사님이 차려주신 점심밥을 먹으면 끝났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이후, 초심자의 혈기는 넘쳤고, 하루가 한참 남은 시점이었지요. 그때 준수형이 제게 ‘일을 더 해볼 테야?’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목장에는 일이 넘쳤거든요.


어느 목장이던 젖소 목장이 매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소 젖 짜기(착유)입니다. 아침과 저녁 12시간 간격으로 두 번 젖을 짭니다. 저는 오후 젖 짜기 보조를 시작했습니다.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목부’라고 하는데요. 사료를 소들이 먹기 좋도록 정리하고 송아지에게 우유를 줍니다. 축사 주변 정리를 하고 트랙터 운전도 배웠지요. 소는 생각보다 거대한 동물이었습니다. 4~5백 킬로그램이나 되는데요. 뒷걸음질에 개구리 잡는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더위에 약한 젖소가 여름을 견디는 모습은 보는 사람 마음도 짠하게 합니다. '젖을 만드는 일' 자체로 포유동물에겐 힘든 일입니다. 젖을 만들기 위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 하는 모습도 가슴이 아프지요. 여름엔 송아지들도 배탈이 나서 설사를 하곤 합니다. 노란 물똥이 주륵 나오면, 보리차를 타줘야 합니다. 추위에 강하기 때문에 젖소는 겨울이 오히려 괜찮다지만, 이때는 일하는 사람이 힘들지요. 축사 곳곳에 있는 물관도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릅니다. 겨울은 이곳저곳 터지는 설비를 쫓아다녀야 합니다.


제가 맡은 일은 단순하고 쉬운 일이었습니다만,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배웠습니다. 진지한 책임감으로 주말도 없이 일하는 준수형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게 십자가를 진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조금이라도 그의 고행을 따른다는 것이 그만 이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 김연옥, 신관호 두 어르신이 한 달 동안 집을 비우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잠시 두 분이 맡고 계시던 택배 포장을 대신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줄곧 택배 포장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목부 일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요구르트 택배는 오후 4시부터 7시 까지 포장을 합니다. 아이스박스에 요구르트를 담고, 박스가 터지지 않도록 테이프를 두릅니다. 그러면 택배 회사에서 가져가지요. 잔뜩 실려가는 아이스박스를 보며, 오늘도 이만큼의 쓰레기를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에 가슴이 아픕니다.


목장에서 우유를 생산하고 공장에서 요구르트로 가공을 합니다. 새벽동안 가공한 요구르트를 다음날 병에 포장해서 거래처에 납품합니다.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공정을 평촌 구성원들은 묵묵히 해나갑니다. 가까이서 지켜보면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목장에서 남는 자원을 통해 무언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책<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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