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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Aug 10. 2021

(7)"내가 작가가 될 상象인가"

주변 사람들_동거인측 입장

작가 체험기_ <돼지를 부탁해>의 브런치북 수상 소식은 조용했던 내 일상에 파동을 일으켰다. 수상으로부터 출간까지 6개월.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작가 체험'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보고 싶다.


책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이 나오기까지만이 아니라, 나는 꽤 오랜 시간을 글쓰기 주변을 맴돌았다. 맴도는 동안 글쓰기 책을 읽으며 매번 새로이 동기를 부여했다. 정기적인 습관을 들여보고자 지역 신문에 책 서평을 써보기도 했다. 격주마다 쓰는 짧은 글이었음에도 나는 끙끙 앓았다. 짝꿍만이 나의 글쓰기 생활을 지켜보는 이였다. 그녀는 현명했고, 좋은 독자였다. 초고를 찬찬히 읽어보고는, 언제나 "음, 좋네"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한 옥타브 정도는 더 격앙된 응원을 기대했지만, 그러진 않았다. 짝꿍이 '솔직한 평'을 하지 않는 것만큼 그녀의 평은 담백했다. 솔직한 평은 개구리를 고꾸라뜨리는 돌멩이 같은 것이었다. 담백함은 지속성을 부여했다. 짝꿍이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의 응원을 해줄 때는 글을 쓰기 전이다. 작가들이 말하기로는, 목차와 구성을 짠 후에 글을 쓰면 좋다고 하는데, 내겐 짝꿍과의 대화가 편집과 기획 과정이었다. 글의 구상을 정리하게 해 주었고, 생각을 분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짝꿍은 내가 꾸준히 펜을 쥘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자료 수집이랍시며 책을 사대는 쇼핑 생활을 지켜본 이도, 벌건 대낮에 노트북 앞에서 끙끙대는 샌님의을 본 이도, '글 한편 척척 쓰지 못하는 나는 해삼, 말미잘이야' 따위의 자책을 하며 머리를 쥐어 뜯는 내 모습을 본 이도 짝꿍이었다.


짝꿍의 친구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왠지 글과 관련된 계통에도 포진하고 있다. 출판사, 잡지사, 글쓰기 선생님, 평론가, 도서관 직원... 그들은 나중에 수상 소식을 전할 때도 편했다. 그들에겐 도대체 '브런치'가 무엇인지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었다. 내 주변인들에겐 “그러니까 브런치라는 것은 말이지 보아뱀을 삼킨 코끼리”라는 말을 매번 해야 했다. 짝꿍과 그녀의 친구들은 마치 내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운명 같은 느낌을 주는 한편, 그들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거대한 벽처럼 느껴져 부담이 되었다. 나는 운명보다는 현실감을 택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 말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글은 글로 말해야 하니까.


브런치북 프로젝트 참가를 결심하고, 원고를 정리하던 중. 나는 이 원고를 짝꿍의 친구들에게도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원고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의 원고가 짝꿍과 나, 두 사람이 아니고도 읽힐만한 내용일지가 궁금했다. 짝꿍의 친구들은 우리 집에 간혹 놀러 왔고, 우리의 농촌 생활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생태적이면서 소박하고자 하는 삶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글만이 아니라 내용에 대해서도 평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일 먼저 생각한 이는 두류. 그녀는 대안학교의 국어교사 출신으로, 지금은 동네에서 글쓰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우리는 출장길에 그녀의 집에서 묶어가곤 했다. 그녀는 두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은 손님들의 방문에 초흥분 상태가 되었다. 5분마다 장르가 바뀌는 연극 무대가 펼쳐진다. 막간을 이용해 수수께끼 시간이 되기도 하고, 시 낭독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연극은 9시가 되어서야 끝을 맺는다. 소극장 경비아저씨가 폭주하는 주연배우들을 재우러 들어간다. 그제야 와인이 나오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류의 이야기는 구성지다. 남편과 아이들 이야기, 친정 식구들 이야기, 그녀의 고향. 그녀를 둘러싼 세계는 하나의 문학이었다. 그녀가 살아가는 세상은 작은 시트콤이었다. 도깨비가 혹부리 영감을 보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두류 같은 사람이 책을 쓴다면 어떤 책이 나올지 궁금하다. 나는 두류의 이야기 능력이 무궁한 것은 그녀의 문학 감각이 뛰어난 것과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혹부리 두류에게 원고를 보이려는 마음은 긴장이 됐다.


원고 전체를 읽은 사람은 짝꿍 이후 처음이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신청한 직후였다. 초고를 출력해서 우편으로 보냈다.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초고에 대해 상당히 격앙된 평을 했다. 그러더니 그녀가 우리가 사는 곳까지 차를 몰고 왔다. 두류의 흥분은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 그건 물론 그녀가 좋아하는 와인이 충분했고, 화목 난로는 훈훈했고, 난로위의 뱅쇼가 향기롭게 끓었던 덕분이다. 또 그녀가 아이들과 남편 없이 홀로 우리 집에 놀러 온 것에 대한 흥분일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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