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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Aug 12. 2021

(8) 아무튼깔루아

주변사람들_동거인 측계속 입장~

작가 체험기_ 책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은 조용했던 내 일상에 파동을 일으켰다. 수상으로부터 출간까지 6개월.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작가 체험'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보고 싶다.


깔루아. 원고에 대한 평을 듣기로 했을 때, 그녀는 두 번째로 생각난 사람이다. 역시 짝꿍의 친구다. 그녀는 십 년 넘게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영업부로 시작해 편집부로 이적하는 전례 없는 발자취를 남긴 깔루아. 가끔 그녀에게 듣는 출판계 이야기나, 책 너머 작가들의 이야기는 동화 속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것이었다. 편집부 내에서도 다양한 팀을 오가며 여러 장르를 경험했다. 그녀만큼 내 원고를 보여주기 적당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이번 프로젝트에 당선되지 않더라도, 편집자의 기준으로 내 원고의 수준이 궁금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SNS 활동이 아닌 오직 한 명에게 대면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떨리는 일인가. 그러니까 깔루아에게 보인다는 것은 진지한 작가 지망생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즈음 우린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는 중이었다. 내가 프로젝트에 한창 몰두할 즈음, 깔루아는 연애를 시작했다. 그녀가 우리 커플에게 연인을 소개해주고 싶어 했다. 이 방문은 내게 개인적으로 몇 가지 기쁜 일이었다. 짝꿍의 친구들 모임에 언제나 소수자(친정집에 앉아있는 보릿자루 같달까)로 있는 것이 외로웠던 참이고, 초고를 완성한 때에 편집자 선생께서 제 발로 우리 집에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 타이밍에 깔루아의 연인에게 심심한 감사 인사를...). 우리는 성대한 술상을 준비했다. 돌문어와 김치전. 바지락 국과 지역 막걸리. 그리고 원고를 출력해두었다. 면전에서 원고를 건네는 일은 긴장되는 일이었다. 어느 분위기에 꺼내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상상해보았다. 오자마자? 아니, 벌써 우린 만났지. 첫 번째 안주를 먹고 나서? 아니, 김치전이 타지 않게 계속 쳐다봐야 한다. 그래, 오늘의 주인공은 동서 아닌가. 오늘의 원고는 잊자. 나는 프라이팬 위의 김치전에 집중한다.


동서는 좋은 사람이었다. 첫 만남이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아무렴 깔루아와 만나는 사람인데. 적당한 유머와 세심한 배려. 그는 그가 사랑하는 깔루아와 관계된 우리에게도 친절하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요즘은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없어 동영상을 못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본인의 어도비(Adobe) 계정을 알려준다. 프리미어를 써보라고. 넷플릭스 계정까지 알려줄 기세다. 하지만 역시 나는 원고 생각뿐이다.


술잔이 오고 가고 이야기가 쌓여간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는지, 그녀는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꺼낸다. 깔루아는 이제 본인의 지향점을 녹여낼 수 있는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인 의미도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래, 출판사 모든 분야를 섭렵한 깔루아라면,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깔루아를 알아왔던 짝꿍이 말했다. 출판사에서 사장 빼고 할 건 다했으니, 이젠 너를 펼쳐보라는 둥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때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이 자연스럽게 원고를 꺼낼 때다. 나는 (망할) 김치전에서 눈을 떼고, 그들이 있는 식탁을 돌아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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