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동호 Sep 27. 2021

(12) "혹시... 작가님?"

_하하, 그렇습니다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 _ 지역 서점


책을 출산(?)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책 한 권 내고보니 나도 어느덧 반-칠십이 되었구나, 이제 우리 아빠의 소원을 들어드릴 때가 되었구나. 그러니까 '어른이 되어야지'라는 결심이었다기보다는 내 책이라는 것이 고마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책에 쓴 내용, 돼지를 키운 경험, 이를 위해 필요했던 자원들이 대부분 친구들의 도움이었고. 고맙지 않으면 사람새끼가 아닌 것이었다. 게다가 마을이라는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도전이었다. 돼지가 엄한 곳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돼지 밥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책에 나오는 고라니 S, 캡틴 H를 '비공식-공동 창작자'에 임명했다. 이들은 '대안 축산 연구회'의 주요 인물들이었고, 그들의 글을 게제하는 것을 허락해주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부상으로 저자본으로 나오는 단행본을 배분했다. 더불어 밥도 한번 샀는데, 추후 혹시 모를 분쟁을 피하기 위한 입막음이었다.


무튼 마을에서 가깝게 지내는 분들에게 책 선물을 하기로 했다. 내가 쓴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싸인'이라는 머쓱한 과정 빼고는 여러 이점이 있었다. (분명 내가 쓴 책 임에도)책 쇼핑의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으며, 선물이라는 만족감, 책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는 희열 따위였다. 이런 기분에 취한 나는 통크게 책을 사댔다. 물론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주 컸다.


좁고 서로 아는 동네라, "ㅇㅇ이가 책을 썼다"는 소문이 퍼지기 전에 선수쳐야하는 그룹. 직장 동료, 이웃집 등등의 관계도를 추려보며 이름을 적어보았다. 마치 여행 일정을 짜듯, 빼먹는 곳 없게. 이 그룹을 꼽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주 컸다. 돌려본 적은 없지만 청첩장을 돌리는 기분을 대리 체험했다.


책은 지역 서점에서 샀다. 매번 (무려) 10권씩. 책을 받기 위해 일주일 간격으로 서점엘 가게 되었다. 현금 결제를 하다가, 지갑을 놓고 간 어느 날부터는 계좌이체를 했다. 내 이름으로 입금, 이건 약간의 쑥쓰러움을 동반했다.


대여섯 번 반복하던 즈음. 주문한 책을 받으려 하는데, 오늘따라 직원분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직원분 입에서 어떤 문장이 아주 느리고 느리게 스트리밍 되기 시작했다.

"혹시... 이 책... 작..ㄱ..?" 어릴 적, 형과 내가 함께 모뎀 통신을 하며 컴퓨터 화면을 보던 추억이 떠오르는 속도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ESC키를 눌렀다.

"네. 접니다. 하하"

직원분이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는 듯, 안쪽을 향해 외쳤다.

"맞대! 작가님이 맞대."

서점 안에 있던 사장님이 후딱 나오셨다.

"아이고, 역시 작가님이시구나. 지난번에 나가는 '뒷모습'이 어쩐지 작가님 같았다니까. 책 재밌게 읽었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역시 서점 사장님다운 안목이시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안녕히."


이날만큼은 평소보다 의젓하게 퇴장해보려 애써보았다. 이정도 반복 구매라면 서점에서도 눈치채지 않을까 싶은 즈음이었다. 하지만 뒷모습보다는 통장에 찍힌 이름을 보고 추정하셨어야 되는 게, 역시 사장님의 기술 아닌가.라고 생각해본다.


덧. 싸인용 멘트는 어렵다. 책 첫 페이지에 적는 멘트. 그것은 책 제목 바로 다음에 보게 될, 그래서 이제는 목차보다 더 먼저 읽히게 될 글. 너무 진지해서도, 너무 대충 써서도 안될 그 말. 한번 쓰면 수정도 불가능. 무조건 백발백중해야 하는 부담. 받는 사람에 맞게 써주어야 할 것 같은데, 내게 그런 순발력은 없다. '나는 작가'라는 정체성을 충만히 가진 상태에서 돌입해야 하는데, 그때그때 감정선이 잘 잡히지 않는다. 분기탱천하여 첫 글자를 썼는데, 망했다. 행간 배치가 안 맞아...

매거진의 이전글 (11)출판사에서 들은_'브런치북출판프로젝트' 선정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