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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04. 2021

(13)"그만큼 벌었으면 돼지 잘 키웠네"

주변 이웃들의 반응(4)_진짜 돼지 키우는 이웃

작가 체험기_ 책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은 조용했던 내 일상에 파동을 일으켰다. 수상으로부터 출간까지 6개월.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작가 체험'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보고 싶다.


시골 마을이래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10명이 공동 수상이라지만, 어쨌든 대상 아닌가. '아침 겸 점심'을 뜻하는 '브런치'도 모르지만, '대상'이라는 단어는 어르신들의 돋보기안경과 보청기를 충분히 끌었다. '자네 무슨 상인가 받았다메?'라는 안부 인사를 받곤 했다. 하지만 나는 얌전히 원고를 수정해나갔다. 출렁이는 마음을 조용히 지키는 것이 될성부른 작가다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책과 관계된 사람들_출연하는 사람,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 가까이서 김치를 주곤 하시던 이웃_에겐 알려야 했다. (물론 책이 인쇄되었을 때 분쟁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늘은 마을 분들의 반응 하나를 전해 본다.


- 실제 돼지를 키우고 있는 양돈 J. 

양돈 J는 얼마 전까지 우리 동네 이장이었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라, 고향에서 안 해 본 것 없이 여러 일들을 해왔다. 지금은 자식에게 양돈을 맡기고 본인은 건축현장에 다닌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유머러스한 양돈 J. 재주도 많아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우린 그에게 전화를 건다. 내 안에는 그를 향한 두 가지 마음이 동시 존재했는데, 그가 정말 괜찮은 아저씨라는 존경심과 돼지를 키우는 사람이라 이웃으로썬 좀 껄끄러운 마음. 문득 풍기는 역한 똥냄새는 분명 그 집에서 나고 있었다.


바로 이웃이기 때문에 돼지를 키울 적에도 조심했다. 코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걸 책으로까지 낸다니, (공장식 축산은 악마의 짓이라는) 이야기를 온 천하에 까발리는 짓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자연 양돈은 분명 공장식 축산의 반대편에 있다. 하지만 축산인을 악마화하고 싶지 않았다. 책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말은, 참여자 모두를 악마를 만드는 산업 구조였다. 이 구조에선 모두가 패자가 되었다. 소비자도, 축산업자도 마찬가지고, 가축도, 노동자도, 농촌도, 생태계도 똑같이 말이다. 악마는 우리가 '세상은 원래 그래'라고 표현되는 곳에 있지 않을까.


쉽게 축산인을 욕했지만, 축산인 언저리에 살아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축산인도 정직하게 정책을 따라왔을 뿐 아닌가. 국가는 꾸준히 식량 생산(농업)을 시장화했고, 농민에게 규모화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축산인 중에서도 기업 축산은 분명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농업 정책을 논하는 여러 회의자리에 넥타이 매고 오던 어떤 기업 축산인을 나는 안다. 


양돈 J도 이제는 위탁 생산만 한다. 개인농장으로써 생산보다는 위탁으로 출하만 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란다. 새끼 돼지(자돈)도, 사료도 모두 계약업체에서 제공받는다. 돼지고기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키우는 것만 집중하면 된다. 그리고 돼지 출하까지 4개월의 관리비만 받는다. 마리당 받는 돈은 삼 만원. 이 돈에는 돼지가 나간 뒤 남겨진 분뇨의 처리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분뇨를 얼마나 '싸게' 처리하느냐가 이쪽에 남겨지는 과제다. 보통은 분뇨 처리장에 돈을 주고 처리하거나(이익이 적다), 퇴비화하여 논밭에 거름으로 낸다. 


동네 악취가 심하지만, '생계'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웃들은 축산'업'을 이해했다.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스스로 화를 삭여왔을 뿐이다. 빨래를 밖에 널 수 없어 건조기를 사거나, 파리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팔리지 않는 땅이 되었거나. 이런 일은 기본값이었다. 행정적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인간관계가 이렇게 저렇게 얽힌 곳이 농촌이기도 했다. 저 집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와 어떤 연이 있었다던지, 무슨 도움을 받았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타지에서 전입 온 주민들은 달랐다. 까탈스러운 귀농인들이 문제라고, 축산인들의 비난도 어찌 보면 이해가 된다. 내가 돼지를 키운 이야기로 상을 받은 사건 또한, 귀농인들의 그런 짓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멀리서부터 쫓아간 양돈 J.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수상 소식을 알렸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말하고 인사하고 싶었다. 

"지난번에 돼지 키운 이야기를 책으로 내게 됐어요."내가 말했다.

"그래? 상금도 받았다며? 세 마리 키워서 오백만 원 받았으면 잘 키웠네." 양돈 J가 예의 농담을 했다. 그 농담을 들으니, 쭈뼛거리던 마음이 풀린다. 그도 나도 모두 '을'이라는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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