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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12. 2021

"돼지 키운 게 책 한 권이면 내 인생은 대하소설이여"

책에 담지 못한 주변 이웃들

작가 체험기_ 책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은 조용했던 내 일상에 파동을 일으켰다. 수상으로부터 출간까지 6개월.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작가 체험'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보고 싶다.



대장부 연옥


연옥은 책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고라니 S의 어머니. 지금(2021년)은 70대 중반인 연옥은 내가 일하고 있는 목장의 설립자이다. 몇몇 증언을 들어 보았을 때 목장이 설립된 것은 1978년 즈음으로 보인다. 그 당시 연옥은 세 아이의 어머니였으며, 남편의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남편은 대출금을 갚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2년 간 건설노동을 하러 갔다. 고라니 S(막내)가 3살이던 때였다. 연옥은 새벽에 장화를 신고 나가 저녁에 그 장화를 벗었다고 한다. 


일의 양만큼이나 연옥의 보짱(배짱)은 대단했다. 남편은 사우디에 일 년만 있을 계획이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일 년이 다 되어갈 즈음, 이런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제 빚은 다 갚았소. 하지만 이대로 돌아오면 다시 빚을 져야 하니 1년만 더 있다 오십시오.' 연옥은 송아지 한 마리를 샀다. 풀을 베어다 먹여 일 년을 키웠고, 그 소를 팔아 다시 송아지 두 마리를 사 왔다. 마을에 남아있던 남편의 친구가 와서 외양간을 만들어 주었다. 


2000년대 즈음하여 마을에 귀농인이 차차 늘었다. 그중에 어떤 이가 목장의 우유를 얻어다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요구르트 공장에서 일을 해본 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요구르트를 몇 차례 얻어먹게 되었는데,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중에 우유를 한솥 끓여 살균을 한 후에 밥솥에 넣어 요구르트를 만들었다. 


끓여본 이는 알겠지만, 우유는 끓는 순간 넘친다. 끓는점에 도달한 액체는 기화가 되고, 우유 속의 수분도 끓으면서 수증기가 된다. 이 수증기가 우유에 거품을 만든다. 하지만 우유의 거품은 단단하기 때문에 잘 터지지 않는다. 무거우면 터지기 마련인데, 거품(우유 막)은 이 정도는 괜찮다는 듯 이전의 거품 모두를 들어 올린다. 이것이 바로 "아우, C8"로 표현되는 우유가 넘치는 모습.. 


우유 끓는 향은 또 어찌나 고소한가. 이 냄새를 맡으면 도깨비라도 잠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유는 저어주지 않으면 바닥이 눌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밤늦게 우유를 젓는 이들에겐 수면제가 따로 없다. 연옥은 우유 젓는 일을 남편에게 시키려고 했으나, 남편은 진즉부터 졸기 시작했고, 우유는 툭하면 넘쳤다. "아우, C8!!" 그렇게 밥솥에서 시작했던 요구르트가 집에서만 먹기는 많아 주변과 나누어 먹었다. 찾는 이들이 많아져 가공시설을 갖추기로 했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밭을 일궈 김장을 하고, 장을 담가 찬을 한다. 물론 그녀에게 걸려드는 세상 모든 부정의한 것(주로 남편이다)들에겐 여전히 불호령이 떨어진다. 연옥은 바깥 산보를 도통하지 않는데도 마을 소식을 꿰고 있다. 종종 찾아오는 동네 아낙들이 소식들을 전해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의 눈은 명철하고 분명하다. 연옥이 없었다면 목장은 지금 없었을 것이다.


연옥에게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수상 소식을 전했다. 내 얘기를 들은 그녀가 말했다.

"얼씨구, 돼지 세 마리 키운 게 책 한 권이면, 내 인생은 대하소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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