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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Mar 13. 2022

북 토크_"생각보다 재미없으시네요"

재미없는 북 토크에 대한 변명과 공통 질문들(1)

글이 책으로 묶였다. 마지막 원고를 송고하면서 느낀 해방감. 그리고 아쉬움. 책은 분명 내가 가진 이상으로 출간되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과거는 아름다워지기 때문일까. 어떤 경험을 되풀이해 곱씹었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멋진 의미를 발견하는 '꿈보다 해몽' 현상일 수도 있겠다.


책에 대해 이야기할 여러 기회가 생겼다. 덕분에 책에 못다 한 이야기나, 하려던 이야기를 정리해볼 기회가 생겼다. 자주 받는 질문도 있고, 내 눈을 뜨게 해주는 질문도 있었다. '어, 이 질문 좀 시원한데...' 어떤 질문은 효자손마냥 내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도 했다. 입이 헤-하고(말이 술술 나왔다는 뜻이다) 벌어졌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를 짚어주는 질문.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농담을 할 수 없는 민감한 내용이었다. 축산업과 육식의 책임감. 내가 재치 넘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지만서도 돼지의 죽음 앞에서 웃길 순 없지 않은가. 


때문에 책의 전반부ㅡ돼지를 데려오고, 키웠던 부분ㅡ를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분들은 북 토크 현장에서 매우 실망하였다. 실망이라는 감정은 특이하게도 사람들 사이에 공유가 되고 내게도 전달이 되었다. 그러면 나는 목소리가 쉬고, 땀이 났다. 어느 날은, "생각보다 재미없으시네요."라는 말을 듣기에 이르기도 했다. "아 저도 나름 웃기거든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작가는 글로 말하는 사람 아니던가. 두고 보자, 아주 배꼽 빠지게 웃겨드리리다. 


쓴웃음을 삼키고 집으로 돌아와 앉아 노트북을 열고 나는 키보드 워리어.. 아니 작가가 되는 것이다. 공통으로 받는 질문의 답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나의 미련이다.


왜 돼지를 키웠고, 왜 잡아먹었나.


배낭여행을 다녀온 나는 농촌을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이라 생각했다. 농촌을 여행으로써가 아니라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근대화된 농촌은 교과서로 배운 곳과 달랐다. 농사가 '산업화' 되었다. 생명을 길러 돈을 번다는 것은 생명을 상품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생명은 물건이 되었고, 물품 생산에는 기계화와 규모화가 따라붙었다. 내가 이주한 동네는 하필 우리나라 축산업 일번지였다. 가장 많은 돼지가 살았다. 돼지의 밀식 사육장이 밀집되어있다. 돼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도시에서의 채식이나 동물권이 아니라, 농촌에서의 가축에 대해, 건강한 생태계에 대해 말이다.


농사의 산업화를 되돌릴 순 없지만.

마을의 규모에서라면 돼지와 인간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산업화된 단절을 넘어 서로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 우리 마을이라면 가능했다. 집도 절도 없는 내가 돼지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이에 공감하는 이웃들이 있었던 덕이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았다. 돼지에게 아무리 대단한 생활여건을 마련해준다고 하더라도, 생태계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었다. 돼지를 죽여야 한다. 


널 잡아먹어도 되겠니? 이 질문을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었다. 사람들과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나의 답이 아니었다. 먹음에는 책임이 필요하다. 좋든 싫든 우리는 생태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돼지를 내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때, 그럴 수 있다면 고기를 먹겠다고 결심했다. 이 기준이 돼지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내 책임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돼지를 기르는 과정과 잡을 때의 노고, 생명의 무게를 알아야 했다. 


변화를 만드는 작은 선택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우리가 고기를 너무 많이,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많은 가축이 소비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린 자연이 허용한 것 이상으로 소비하고 있다. 자연이 보내는 경고 신호를 세입자인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우리 필요에 자연을 맞출게 아니라, 자연에 우리를 맞출 때가 되었다.


채식이 채식과 비 채식으로만 나뉘어 있지 않듯이, 변화를 만드는 길은 작은 선택들로 이어져 있다.

돼지를 키우며 배운 것은 돼지는 정말 큰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성체가 100킬로그램 정도 된다. 그런데 이 중에서 우리는 얼마큼을 먹고 있을까. 삼겹살은 돼지 한 마리에게서 15킬로그램 정도가 나온다. 삼겹살은 국내 생산량으로는 부족해서 수입하고 있다. 다릿살 같은 부위는 소비되지 못해 남아돈다. 남는 부위는 계속 남고 부족한 부위는 계속 부족하다. 우리는 돼지를 매우 비효율적으로 먹고 있다는 말이다. 


낭비를 줄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돼지를 완전히 먹는 것만으로도 돼지 사육두수를 줄일 수 있다. 뒷다리 살을 선택하는 것이 고통받는 돼지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적은 마릿수는 사료 소비를 줄인다. 이는 옥수수 재배에 쓰이는 제초제와 살충제, 화학비료를 줄일 수 있다. 화학약품으로 인한 바다 오염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인간과 가축이 차지하는 97%의 지구 영역을 줄이면 자연이 회복될 수 있다. 작은 행동이 다른 세계로 향하는 디딤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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