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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Mar 13. 2022

질문2_대안 축산 연구회의 정체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_공통 질문(2)

책에는 여러 친구들이 나온다. 귀촌 후 마을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이야기다. 


이중에서도 '대안 축산 연구회'에 대한 질문은 꼭 나온다. 


'연구회'라는 이름은 어쩐지 거창한 느낌을 준다. 모일 때마다 국민의례를 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데, 알고 보니 농촌에는 'ㅇㅇ작목반'과, 'ㅇㅇ연구회'라는 이름이 흔히들 있어왔다. 이제는 노인회에 편입된 할아버지 세대의 농촌에서 부흥했던 모임인데, 그 잔재가 여즉 내려오는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동아리 수준의 모임이다. 오해는 오해지만, 아무튼 대안 축산 연구회 사람들은 책에서는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캡틴 H는 연구회 설립을 제창했으며, 모임의 실제적인 대장이었다. 그는 뿔뿔이 흩어져있던 우리를 '대안 축산'이라는 깃발 아래 모았다. 우리는 그가 모이자면 모였고, 하자면 했다. 이 깃발 아래, 우리의 유구한 전통에 따라 고라니 S는 가장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고라니 S는 역시 전통에 따라 회장직 수임을 거듭 고사를 했다. 한동안은 매번 모일 때마다 이 안건("나는 회장이고 싶지 않다")이 우리의 첫째 의제였는데, 우리는 회장 앞에 '명예'를 붙임으로써 최종 합의를 보았다. 캡틴  H가 그를 계속 설득했던 것은 그가 단순한 축산업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고라니 S는 책에 나오듯, 유기축산 목장을 하고 있다. 유기축산 목장은 우리나라 전체에 1%만 있는 목장이다. 약 15년 간 유기축산을 지속한다는 것은 철학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건강한 사료를 먹여야 하고, 약이 필요 없을 정도의 환경을 유지해야 하며, 매년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는 일이다. 어쨌든 이런 어려운 일도 15년을 하면 안주하기 마련이기도 한데, 고라니 S는 그러지 않고 계속 정진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동네 청년과 같이 일을 한다. 송아지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 어미소가 휴식할 수 있는 기간을 마련하는 일. 은퇴하는 소가 천천히 죽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일. (목장의 젖소는 착유량-우유 생산량-이 떨어지면 바로 고기소로 전환된다. 고기소가 된다는 말은 곡물 사료를 먹어 체중을 급격히 늘려야 한다는 말이다. 최대한 고기량을 늘려 판매하는 것이다. 곡물 사료를 먹이는 것은 사람에게 밥 대신 사탕을 주는 것과 같다.


당연한 일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목장을 경영하는 사람에게 이건 다 돈이다. 조금이라도 아껴서 생산비를 줄여야 하는 게 경영 원리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손해인 줄 알면서 하는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본인의 양심에 따라 하는 것. 이것은 그가 경영자보다는 생명을 기르는 농부로서 살고 싶은 게 더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당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은 두 사람의 영향이 컸다. 영향 정도가 아니라 이들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캡틴 H와 고라니 S는 주류의 기준으로 보면 쓸데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돈과 무관한 일. 이웃을 만드는 일 말이다. 그래서 돼지 이야기를 할 땐 마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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