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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화. 시드니 생활 1개월 차, 슬며시 찾아온 향수병

여기는 시드니인가요 아니면 한국 사무실인가요

ㅣ시드니에서도 일, 일, 일.


4월 23일, 일요일 오전. 시드니 도착 후 선배와 점심을 먹고 필요한 물품들 장을 보고 호텔에 돌아와 내일 출근 준비를 했다.


시드니를 즐길 새도 없이 바로 열일 모드로 들어갔다. 그럴 만도 했다. 왜냐면 나는 여행객이 아닌 주재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회사는 시드니 시티와 차로 약 20-30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구경할 만한 것도 없었고, 평일 퇴근 후 갈만한 곳도 맥쿼리센터(롯데몰 같은 곳) 정도였다.


그 당시 법인에는 약 10명 정도 되는 직원들 뿐이어서 사무실도 굉장히 작고 아담했다. 가족 같은 회사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스타트업 느낌도 들었다.


아침에 가장 먼저 출근해서 사무실 불을 켜고 가장 마지막에 불을 끄고 퇴근을 하는 사람이 됐다.


워크퍼밋이 나오기 전까지 약 4개월을 호텔에 머물렀는데, 그 당시 묵었던 호텔 인테리어가 굉장히 어두 껌껌했다. 위치도 애매한 곳에 있어서 밤에 어디 산책을 나간다거나 잠깐 리프레시할 만한 공간도 없었다.


7:30 AM 출근

8-10:00PM 퇴근

그리고 다시 호텔.


내가 주재원으로 투입되었던 시기가 이제 막 법인이 세워진 후, 현지 생산 제품이 출시되고 마케팅 활동을 시작할 때여서 말도 못 하게 바빴고 적은 인력으로 모든 것을 커버해야 했기 때문에 ‘일당백’처럼 영혼을 갈아 넣었어야 했다.



초반에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던 사진(하핫)




일은 너무 힘들었지만, 아침 출근길은 행복하고 신났다. 내가 시드니에서 일하고 있다니! 최대한 이 순간을 즐겨보자라고 생각하며 출근길을 걸어갔다.


푸른 하늘과 이름도 모를 처음 보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만 봐도 감격스러웠다. 난생처음 다양한 인종들을 가까이서 접했고, 식사를 하러 가도 다양한 언어들이 귀에 들려왔다.


매일 10분 전화영어도 20분으로 늘렸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영어회화 일주일 안에 끝내는 법‘, ‘영어 리스닝이 안될 때는 이렇게 해보세요’와 같은 영상을 갖고 왔다.


회사 분들과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 때에도, ‘저 이번 주에 울루루로 캠핑 다녀왔어요’, ‘이번에 브리즈번 여행 가는 데 거기서 집 좀 보고 오려고요’ 등.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하지도 않았을 대화들과 내용들이 오고 갔다.


내 주변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 출근길부터 시작해서, 사는 곳, 점심 메뉴, 장 보는 마트, 핸드폰 번호, 주변 사람, 대중교통, 심지어 우측통행, 우측 핸들과 우측 에스컬레이터까지…






호텔 근처 맥쿼리센터, 회사가는 길


너무 열심히 하려고 했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사람이 그리워서였을까.


여느 때와 같이 마지막으로 퇴근하면서 사무실 불을 끄고 나와 깜깜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예쁘고 밝은 초승달이 떠있었다.


그 달을 보는데 갑자기 오른쪽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바로 옷소매로 닦아냄과 동시에 반대 눈에서도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는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 눈물이 나왔다.


“나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시드니에서 일한다는 사실 자체는 진심으로 좋고 감사했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달랐다. 주재원으로써, 회사에서 주는 책임과 업무량은 더 커졌고 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혼자 감당해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 힘듦과 답답함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이게 외로움이라는 거구나.


워낙 혼자서도 잘 지내고, 중국 유학 시절에도 외로움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어서 사실 ‘외롭다’라는 말 자체를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드니 생활 1개월 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큰 외로움과 함께 향수병이 찾아왔고 이 감정을 이겨낼 방법이 필요했다.


1. 주말은 무조건 시드니 즐기기

2. 기도하면서 출석할 교회 인도받기

3. 정시 퇴근 하는 날 정해서 저녁시간 누리기

4. 빨리 현지 친구 사귀기

5. 맛있는 거 많이 먹으러 다니기(맛집 도장 깨기)

6. 시드니 관광 명소 돌아다니기

7. 워크퍼밋 나오면 거주할 집 미리 알아보기

8. 카페 가서 좋아하는 책들 잔뜩 읽기


이 리스트 외에도, 힐링에 도움 될만한 활동들을 계속 업데이트해나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성경 말씀처럼, 내 환경과 상황을 극복해 내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생활, 더 행복한 시드니 주재원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

01화. 직장인 7년 차, 호주 주재원으로 발령 나다

02화. 호주와 인연이 될 뻔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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