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에서 고마코를 만나고 싶다

허무의 무덤에서 정열의 불씨를 찾는 나는 에치고유자와행 기차에 오르다

by 유연구지

언제 다시 피를 토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여행은 고사하고 문밖을 기웃거리는

내 발걸음조차 묶었다.

그렇게 삼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쩌다보니 일본까지 와있고

커다란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여유로운 공원과 햇살 그리고

바삐 오가는 사람들의 조화로움이

낯설다.


일본에서의 첫겨울.

일본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눈에 들어왔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모든 것이 '헛수고'라고 허무에 빠진

시마무라에 대하여

고마코와 요코의

헌신적이고 뜨거운 사랑,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 숨 쉬는

삶의 극적인 대비가 흑백영화 같다.


모든 것이 헛일이라는 시마무라는

터널 끝 눈의 고장,

거기서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지는

쾌락에 멈추어서지만


나는 그곳에서

눈처럼 하이얀 순수함과

불타는 붉은 정열이 뒤범벅된

고마코를 만나고 싶다.


내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이

빛을 잃고 의미를 상실하여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진공상태 느낌


하루하루 무기력을

내 몸뚱이 위로 쌓고

그 무게에 짓눌려

나는

허무의 무덤에 갇힌다.


가자.

시마무라가 허무에 싸여

몸무림 치는 영혼을 안고

쾌락에 태워버리기 위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 머문 그곳으로.


그러나 나는

시마무라를 닮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선택과는 다르겠다.


일단 나가보자.

나는 남편을 보호자로 세우고

JR도쿄 와이드패스를 사서

에치고유자와행 신칸센을 탔다.


과연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면

시마무라, 고마코와 요코가 숨 쉬는

눈의 고장에 닿을 수 있을까.


행여

타오르는 불보다 더욱 붉은 피가

하얀 눈 위에 꽃으로 피어나게 되면

나는 시마무라보다 더욱 깊은 허무의 굴레에 빠지게 될까.


에치코유자와 역에서 내렸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하이얀 눈이 집을 삼킬 듯

짓누르는 고장이었다.


도로 중앙선을 따라

작은 스프링클러 모양으로

온천수 같은 따뜻한 물이 뿜어져 나와

도로를 녹여

검은 긴 혀를 내두르는 듯

길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담벼락보다 높은 눈담 사이로 난 길을 헤집고

남편과 역 앞의 우동집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소바와 모둠버섯튀김 주문,

착한 음식 가격이 동경과 다르다.

모둠버섯튀김을 들고

앉은뱅이 탁자로 와서 무릎 꿇고

다소곳이 음식을 내려놓는

덩치의 큰 주방장 모습은

동경과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


에치코유자와 역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동쪽에서 우동을 먹고

역 안에 사케 자판기가 있는

에치코 사케 뮤지엄 폰슈칸에 들어갔다.


나도 한때는

안암동의 주당파라 불리기도 했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있나.

구경이라도 하자.


오백 엔에

다섯 잔의 사케를 맛볼 수 있는 쿠폰과

술잔 한 개를 준다.

니카타현의 150여 종의 명주를 시음할 수 있다.

남편의 진지한 시음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향기롭고 그윽하다.


날 잡았다.

그동안 아껴두고 모아 온 체력의 기운이 활활 타오른다.

숙소까지의 교통수단도 모르겠고

거리로 따져보니

내게 의사가 처방한 매일 만보걷기 거리 즈음에

미리 정해둔 숙소가 있다.


걸어가자.

다행히 순순히 남편도 동의한다.

오늘의 만보걷기는 이것으로 때우자.


가는 길에 눈이 내렸다.

처음에는 눈밭의 신난 강아지마냥 폴짝거리다가

눈발이 굵어지니 덜컥 겁이 났다.

기침을 하게 될까 봐.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올까 봐.

우산 아래로 숨듯이 기어들어가 눈만 반짝이며

걸음을 옮겼다.


민속박물관 설국관,

에치코유자와 로프웨이 스키장을 지나서

또 걸으니 다카한 료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곳에서 설국을 집필했다지.

숨을 고르고 미닫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6층 건물 중 3층의 방을 얻어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가지가 아름다운 나무 한그루가

뽀얀 눈옷을 입고 베란다 앞에서 지키고 있는 뷰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랜만의 여행에 취하여 들뜬 나에게

조금은 진정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1층의 설국 문학관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들을 만났다.

그의 글씨, 그의 책, 그의 자리, 그의 물건들,

그의 사진, 그를 보고 간 사람들,

그리고 고마코의 모델이 되었다는 게이샤의 사진.

거기서 내 걸음이 멈추었다.


집 앞 공원을 매일 만보걷기 위해

열 바퀴 스무 바퀴 정해둔 코스대로

다람쥐 쳇바퀴 모양 똑같이 맴돌던 내가

설국에 와있다니.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나는 도란사민 네 알을 믿고 기차를 탔던 것일까.

고마코에게서 허무를 쾌락으로 태워버리는

시마무라와 달리

나는 그녀가 뜨겁게 살아내는 현실적 삶을 보고

내 지긋지긋한 허무가 옷을 벗고

의욕의 희망으로 갈아입기를 바랐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 한다.

남몰래 가슴으로 불타는 뜨거운 짝사랑을 하든,

역마살이 끼어 집 밖으로 뛰쳐나가 길 위의 방랑자가 되든,

내 엄마같이 굽은 허리로 방바닥을 무한반복 닦고 또 닦고 하든지

어쨌든 부정적이지 않은 무엇인가를 해내면서

하루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걷듯

하루하루 목숨의 시계를 재고만 있었다.

마치 죽음을 향하여 걸어가는 걸음수를 재고 있는 것처럼.


나의 지난 삼 년의 시간은

세상 모든 것이 시마무라의 허무,

헛일 같은 것이었다.

오늘 하루 살아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기는 했던가.

능동적이지 않은 삶은 생명이 없다.


다카한에서의 하룻밤은 뜬 눈으로 세웠다.

고마코의 모델이 되었다는 게이샤의

눈빛과 야무진 입매무새가

건강하지 못해 남편에게 미안한 내 마음과 서운함,

엄마에게 잘해드리지 못하는 불효,

내 건강을 볼모로 친구들에게 소원했던

나의 불성실함을 향하여 입을 열 것만 같았다.


다음 날 나는 남편을 깨워 서둘러 동경행 신칸센을 탔다.

나는 어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초조한 눈빛 대신 무엇인가 해도 된다는 자존감,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세상에는 차디찬 허무한 것들을 안아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과

다만 그것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결정하는 것은

내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상이 허무한 것이 아니라 내가 허무한 것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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