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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루아 May 14. 2022

전설의 문

<3000자 단편>

나는 탐험가다. 나는 내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을 탐험하고 확인하고 만지고 기록한다.

때로는 어둠에 주저하기도 하고, 뜻밖의 소리에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난 멈추지 않는다. 난 용감한 탐험가니까. 가끔 외로움이 가슴에 사무칠 때면 탐험은 외로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라며 나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인다.

아침 햇살이 굳게 닫힌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때면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 흘리기도 하지만 곧 기운을 차리고 새로운 호기심으로 가슴을 채운다.

오늘은 좀 위험한 모험을 떠날 예정이다. 어쩌면 마지막 모험이 될지도 모르겠다. 며칠 동안 꼼꼼히 계획을 세웠다. 지도를 그리고 준비물을 챙기고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내가 처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상상하고 대비했다. 처음 이 문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정말로 이 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문의 이름은 '전설의 문'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불리는지 이유는 모른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그렇게 전해졌다고 한다.

우연히 마주친 남자로부터 이 문에 대해 전해 들은 그날 이후로 내 삶은 이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의문을 품지 않았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게 되었고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탐험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만난 날 그 남자는 나에게 물었다.

"넌 이름이 뭐니?"

"이름?"

나는 마치 이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반문했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처음 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낯선 그 단어를 몇 번이나 되뇌었다.

"이름... 나의 이름... 내 이름..."

"그래, 이름. 네 이름 말이야. 난 제이라고 해."

그의 눈은 햇빛을 머금은 황금빛이었다. 난, 마치 눈부신 햇빛을 바라보듯 눈을 찡그렸다.

"모르겠어. 내 이름이 뭔지. 아니 내가 이름이 있는지도 모르겠어."

내 대답에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다 이내 웃음을 지었다.

"그럼 넌 어디서 사니?"

난 또 한 번 눈을 찡그렸다. 미간에 주름이 잡힌 내 눈을 잠자코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그럼 전설의 문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구나?"

"전설의 문?"

내 말에 그는 신이 나서 전설의 문에 대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응, 전설의 문은 이곳 어딘가에 숨겨져 있데. 이곳이 엄청나게 넓긴 하지만 그 문을 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고 해. 혹시 우주로 통하는 문이 아닐까? 아니면 과거랑 통하는 문일까? 너무 궁금해. 난 계속 그 문을 찾아다니고 있어. 그러다 이곳까지 와서 널 만나게 된 거야."

나는 그가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이야기 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혼자라는 것은 나에게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했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나는 그에게 그의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그는 문을 찾아야 해서 바쁘다며 곧 떠나버렸다. 그가 사라진 통로의 어두컴컴한 끝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그를 따라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후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상상도 못 할 행동을 했다. 그가 사라진 복도 끝으로 걸어가 본 것이다. 그리고 며칠을 고민한 끝에 복도 끝에서 모퉁이를 돌았다. 그렇게 나의 탐험은 시작되었다. 내가 사는 곳은 아주 넓었다. 한번은 너무 멀리 가서 돌아오지 못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 후에는 가 본 길을 그림으로 그려 기록을 남겼다. 돌아올 때는 그 그림을 따라 돌아올 수 있었다.

혹시나 그와 만난 것처럼 누군가를 만나지는 않을까 기대했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우연히 벽 속에 사는 사람을 만났던 적은 있지만 그는 나의 행동을 따라 하기만 할 뿐 벽 속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며칠을 다시 찾아가 그에게 말을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행동을 따라 하는 그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 내가 눈물을 흘리자 그도 눈물을 흘렸다. 그도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전설의 문을 찾으려면 더 이상 그를 찾아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문을 찾고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왔다. 그도 뭐라고 입을 뻐끔거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수많은 탐험을 통해 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대략적인 지도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구조를 통해 전설의 문이 있을 만한 곳을 짐작해 보았다. 수많은 탐험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며칠 전 드디어 찾은 것이다. 며칠을 문 앞까지 가서 되돌아왔다. 망설임 끝에 오늘 드디어 결심한 것이다.

나는 내 보물, 그동안의 기록과 지도, 주의사항, 위험한 곳에 대해 적어놓은 노트를 들고 벽 속에 사는 그를 찾아갔다. 그가 언젠가 그 벽에서 나오면 이 노트를 보고 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에게 전해주려고 말이다. 그런데 그가 나와 같은 노트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내용을 보여주려 그에게 노트를 펼쳐 보였다. 그러자 그도 노트를 펼쳐 보였다. 내가 쓴 것과 똑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문득 거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단어처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냥 알고 있는 단어였다.

‘모든 것을 똑같이 보여주는 벽’

‘혹시 이게 그 거울일까? 그럼 저 사람은 나인가?’

나? 나는 누구지? 가슴이 일렁였다. 난 애써 마음을 다잡고 걸음을 옮겼다.

전설의 문을 열면 여기가 어디인지, 내 이름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지금 그 문 앞에 서 있다. 손잡이는 소리 없이 매끄럽게 돌아갔다. 거대한 크기에 비해 살짝 미는 힘에도 묵직함 없이 문은 스르르 열렸다. 살짝 열린 틈으로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나와 나는 눈을 깜박이기 위해 잠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눈이 빛에 익숙해지자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곳에는 그가 서 있었다. 이 문에 대해 알려 준 바로 그였다. 그가 턱 주변에 달린 검고 동그란 것에 입을 대고 말했다.

"클론 6431번이 실험실을 찾아왔다. 정보를 제공한 지 27일 만이다. 정보를 제공받은 동일 유전자 300명 중 가장 빠른 속도임. 그의 뇌로 이식하겠다."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어서 와."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벽 속에 갇혀 있던 슬픈 눈빛의 그와 똑같은 색이라는 것을.

나는 그의 황금빛 눈, 그리고 새하얀 머리와 그의 등 뒤 거울에 비치는 나의 황금빛 눈과 황금빛 머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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