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루아 Sep 19. 2023

그의 작은 보물

<3000자 단편>

"드디어 찾았다!"


쇳소리 섞인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수풀 사이로 털이 잔뜩 난 팔이 쑥 들어왔다.


'아..... 끝이구나.'


첼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삼일간의 도망 생활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배고프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간도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두려움과 함께 자포자기한 안도감이 함께 밀려왔다.


"미안해, 헤이든"


첼시는 애타게 그녀를 찾고 있을 헤이든을 떠올리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를 늘 작은 보물이라 부르던 헤이든은 자유롭게 생활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부터 혼자 하는 외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창밖만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첼시는 화가 났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고, 언제까지인지 기약도 없었다. 홧김에 몰래 밖에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은 늘 그녀에게 친절했다. 어릴 적에는 눈만 마주쳐도 웃음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성인이 된 그녀가 헤이든과 함께 길을 나서면 입고 있는 옷과 목걸이 등을 칭찬하며 그녀에게 살갑게 다가왔다. 그녀의 생활은 늘 안락하고 평화로웠다.


"행복한 생활에 젖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대가가 이거로구나.'


첼시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지난 삼일간 처절하게 실감했다.


처음 집 밖으로 나왔을 때, 그녀는 다가오는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묻지도 않고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고 어딘가로 데려가려 했다. 소리치고 발버둥 쳐도 지나가는 어느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지? 왜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지?'


안간힘을 써서 그들에게 벗어난 이후 몇 번의 비슷한 경험을 통해 첼시는 깨달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를 팔아넘기면 돈이 된다는 것을.

"나는 고귀한 혈동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의문을 해소하는 것보다는 몸을 숨기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녀는 사람들 눈을 피해 마을을 둘러싼 숲으로 점점 들어갔다. 배고픔에 지치면 계곡물로 배를 채웠다. 그렇게 도망 다닌 지 삼일만 에 결국 잡히고 만 것이다.

그 남자는 거칠게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들어올려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큭큭 이거 꽤나 돈이 되겠는데? 며칠 공친 걸 만회하고도 남겠어."

남자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커다란 봇짐을 그녀에게 덮어씌웠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남자의 어깨에 실려 한참을 이동했다. 어찌나 꽁꽁 묶었는지 점점 숨이 막혔다. 극도의 두려움에 아랫배가 옥죄어 왔고 방광은 터질 듯 부풀었다. 더 이상 참기 힘들다고 생각했을 때 흔들림이 멈추고 딱딱한 바닥에 봇짐 채로 내팽개쳐졌다.

"100만 소화"
쇳소리가 섞인 그녀를 납치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어허! 무슨 소리하나. 이 사람? 시세의 다섯 배나 더 받겠다니 제정신이 아니구먼."
가래가 잔뜩 낀 노인의 목소리였다. 그녀를 두고 흥정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봐 노인장, 안 살 거면 빨리 말하라고. 그 돈 주고 살 사람도 줄 섰어. 요새 이마저도 씨가 마른 거 모르나?"

"그래도 그렇지. 100만 소화는 너무하지 않은가? 내 50만 소화까지는 쳐줌세."

"100만 소화에서 1펜실도 못 깎아주니 살 건지 말 건지 결정하라고."
 쇳소리의 단호한 말투에 노인은 가래를  퉤퉤! 내뱉었다.

"어허, 거참 알겠네. 그럼 그전에 상품을 한번 봐도 되겠나?"

갑자기 붓 짐 안으로 자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첼시는 눈이 부셔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떴다. 망설임 없이 그녀를 움켜쥐는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그녀는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지만 며칠을 굶은 그녀에게는 희미한 신음소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낑... 끼잉."
"으하하하. 거 귀염 꽤나 받던 개새끼구만? 목에 건 목걸이가 내 딸년 꺼보다 더 비싸겠어."

귀를 울리는 커다란 목소리에 기겁을 한 첼시는 그만 오줌을 싸고 말았다.

"이년! 이거 더럽게 어디서 오줌을 지려?"

노인은 첼시를 바닥에 휙 던져버리고 그 위로 걸레를 던졌다.


"어허. 거 좀 살살 다루쇼 멍들거나 부러지면 구워도 실에 핏줄 자국이 남아서 가격 떨어지는 거 모르나?"

쇳소리가 첼시를 다시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첼시는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를 구워 먹는다고? 헤이든이 무서운 이야기를 해준다며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까마득히 오래전 사람들이 먹을 게 부족할 때 집에서 키우던 우리들을 잡아먹는 나라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수백 년도 더 전의 일이라고 했다.


"알겠네. 알겠어. 거참 이런 조그만 개새끼라도 처먹겠다는 부자님들 비위를 잘 맞춰드려야 우리도 입에 품질이라도 하지 않겠나?"

"그러게 말일세.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개새끼를 먹는 건 고리적 전설로나 들었는데, 뭐 이럴 줄 알았나?"

"그때야, 소고기가 넘쳐나서 우리 같은 가난한 것들도 닭고기, 돼지고기는 아쉽지 않게 먹었으니."

거래가 성사되어 기분이 좋아진 둘은 아예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루에 널브러져 낑낑거리는 첼시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거 육식을 다시 허용한다는 얘기는 없고?"

"언감생심이지. 인수공통 전염병으로 인간들까지 싹 골로 갈 뻔하고 나서, 백신이다 유전자 조 작이다 뭔 짓을 해도 안 돼서 죄다 도살하고 인공배양육만 먹으라고 했을 때, 첨엔 얼마나 다들 지 랄발광을 했소? 가난한 놈들. 부자 놈들 가릴 것 없이 시위하고 난리 부르스를 쳤어도 결국 그놈의 전염병 극복을 못하니 낼 수 있나?"

"니미럴, 배양육은 너무 비싸서 맛도 못 봤는데, 거 고기랑 똑같이 생겼더니만 맛이 다른가 봐? 눈에 불을 켜고 이렇게 살아있는 고깃덩이들을 찾는 걸 보면"

첼시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왜 헤이든이 밖으로 못 나가게 했는지, 왜 늘 먹던 사료를 주지 않고 헤이든이 먹는 밥, 반찬과 같은 음식을 나누어 주었는지.


"뭐 나도 모르지. 우리 같은 놈들이야 배양육만 먹어도 소원이 없겠구먼, 듣기로는 근육의 쫄깃함이랑 익혀도 느껴지는 은근한 피맛이 다르다더구먼."

노인과 남자는 동시에 첼시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거 어쨌든 나는 이만 가 보겠네."
"그래 그래. 또 좋은 놈 있으면 연락 주라고"

커다란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노인은 첼시를 내려다보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자 누가 너를 더 비싼 값에 살지 한번 보자꾸나. 지금까지 팔자 좋은 개새끼로 살아왔으니 너도 인간한테 도움이 돼야 하지 않겠니?"

노인은 첼시의 목걸이 속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봐. 그쪽이 기르던 귀염둥이를 내가 데리고 있는데 말이야. 거 나도 그냥 주고 싶은데 직접 구한 게 아니고 비싼 값을 치르고 사 온 거라 말이지. 사례비 정도는 받아야겠는데... 오? 그래? 얼마든지 내겠다고? 으하하하. 거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군."


노인의 통화를 듣던 첼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헤이든이 큰 대가를 치르다니.

"거, 나도 한때는 애견인이었다고. 내가 산 가격만 받고 넘기겠네. 150만 소화만 내시게. 뭐? 깎아달라고? 아니 이 사람이! 나도 산 가격이 있는데 그 이하는 절대 못 주네. 뭐? 포기한다고? 오래간만에 좋은 일 한번 하려고 했더니. 생명이 어쩌고 저쩌고 위선들을 떨더니 돈 앞에서는 똑같구먼."

노인은 퉤 하고 가래를 뱉은 뒤 두 번째 수화기를 들었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요. 이번에 아주 통통하고 나이도 적당한 좋은 고기가 나와서 연락드렸습니다. 요즘 가격이 많이 오른 건 아시죠? 150만 소화는 받아야겠는뎁쇼. 아  그럼 어떻게? 손질까지 싹 해드릴까요? 아님 며칠 더 살을 찌워 산채로 드릴까요? 네네, 아이고 제가 감사하죠."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이 된 노인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첼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