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때] 인도, 2007
"야, 너 왜 여기 있어?!!"
그건 그녀 특유의 반가움의 표시였다.
인도 맥그로드간즈 피스 카페 문을 열고 그녀가 들어왔다. 이게 얼마만이야... 아그라를 앞두고 헤어졌으니 3주 만에 다시 보는 얼굴이었다. 장난치는 표정으로 농을 걸어오면서도 입은 웃고 있다.
한 달 반 전 인도에 들어와 숙소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 나보다 2살 많았지만 스스럼없이 친구처럼 지내다 여행지에서의 인연이 그렇듯 우다이뿌르에서 헤어졌다. 그녀는 그곳에 더 머물고 싶다 했고, 나와 다른 일행들은 아그라로 떠났다.
그랬던 그녀를 맥간에서 다시 만난 거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우리는 노트를 찢은 메모를 상대가 갈 법한 숙소, 카페에 붙여놓거나 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전했다. 그녀는 같이 다니던 일행들에게서 떨어져나와 홀로 레로 갔던 내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서 들은 모양이었다. 레에서 내려온 내가 맥간으로 갈 거라는 메일을 받았단다. 그러면서도 그런 농을 던진다.
친구를 사귀고 알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면, 여행지에서 사귄 친구는 더 짧은 시간이어도 충분하다. 그곳이 인도와 같이 덥고 힘들고 열악한 곳이라면 더 그렇다. 40도가 넘는 더위에 귀와 콧구멍까지 파고드는 먼지... 누군들 힘들지 않고 누군들 인내심의 끄나풀이가 간당간당하지 않을 수 없다. 가식을 떨려야 떨 수 없고 체력도 마음도 밑바닥이 쉬이 드러난다. 그래서 누군가는 '결혼하기 전에 그 사람과 인도에 가라'고 했을까.
인도에서 같이 일사병을 앓고 거의 2주 동안 24시간 붙어 지낸 그녀는 적어도 내 동창 정도는 됐다. 편했고 그리웠으며 어떻게 다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바나나 팬케이크를 나눠먹고, 맥간의 별을 보며 같이 담배를 피웠다. 별이 참 예쁘다고, 그 인도 담배는 별로 안 좋다는 소문이 있으니 내 걸 피우라고, 길 아래 카페는 맛이 어땠냐고.
다음날 남걀사원 뿌자에 다녀온 나는 시름시름 앓아 누웠다. 여행의 모든 피로가 몰려온 듯 온몸에 열이 나고 으슬으슬 춥고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와 이름도 모르는 그녀의 친구는 그런 내 곁에 종일 붙어 스프와 주스를 먹이고 머릿수건을 바꿔주며 극진히 간호했다. 우리가 재회했던 피스 카페 사장님은 단수로 영업을 하지 않으면서도 내게는 음식을 만들어 내줬다. 곧 헤어질 우리는 인도에서도 한국에서도 다시 만날 기약이 없었지만, 그녀와 그들은 내게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그녀와 친구는 맥그로드간즈를 떠나는 날까지 날 돌보고 걱정했다. 고맙고 미안해하는 내게 그녀의 친구는 말했다.
"고마우면 나한테 갚으려고 하지 말고, 너도 나중에 다른 여행자들을 도와주면 돼."
꿈을 향해 달리다 무릎이 꺾여 떠나온 인도였다. 도망치듯 짐을 꾸렸고 도망치듯 떠났다. 지쳤고 앞길이 막막했다. 드라마보다 더 슬픈 현실에서 가능한 멀리, 오래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 내 등을 처음 만난 그들이 두드려줬다. 아프지 말라고 얼른 일어나라고.
안개가 뽀얗게 내리는 맥그로드간즈 길 끝에서 우리는 이별했다. 그들은 배낭을 메고 떠났고 나는 남았다. '아픈 널 혼자 두고 가서 속상하다'던 그들의 위로도 함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