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조금 망쳐도 괜찮아

[여행 그때] 라오스 2012

by 재주


라오스 루앙프라방.

화단에 분홍 꽃나무가 심어진 숙소 침대에 누워 너는 내내 앓았어.

처음엔 파파야 주스가 이상한 것 같다더니, 배탈이 크게 난 것도 아닌데 계속 배가 아프다고 했지.

침대에 누워 애써 웃는 네 얼굴. 아마 네 앞에 선 나는 어쩌지 하는 표정이었을 거야.

넌 괜찮다고 희미하게 웃으면서 혼자라도 아침 먹고 오라며 내 등을 밀었지.


난 네 걱정 반, 쓸쓸함 반으로 터덜터덜 나무 계단을 내려와 숙소 앞 작은 식당에 앉았어.

할머니 한 분이 주인이자 요리사이자 종업원이었던 아주 작은 식당.

벌써 한 여행자가 식탁에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더라.

치킨 국수를 하나 시키고 40분을 기다리는 내내

너는 괜찮을까, 배탈이 왜 낫지 않는 걸까, 오늘 돌아다닐 수는 있는 걸까 생각이 맴돌았어.

국수는 왜 그리 맛있었는지. 그릇에 코를 박고 국물까지 들이 마셨지.


눈치없는 나는 숙소에 돌아와서도 라오스에서 먹은 국수 중 최고였다고 네게 재잘댔어. 다음에 꼭 같이 가서 먹자고, 너도 좋아할 거라고 수다를 떨었지. 너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 내가 떠드는 걸 들어줬어.





조금만 더 쉬겠다던 네가, 병원에 가야겠다고 일어났어. 나는 또 다시 눈치없이 방금 약 먹었으니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지. 아픈 걸 티내지 않는 너인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다시금 말했어. 나는 그제서야 1층으로 내려가 주인 아주머니께 가까운 병원이 어디냐고 물었어.


"친구가 많이 아파요."


아주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숙소 건너편에 있는 한 의원으로 들어갔어. 의사가 없네요. 잠깐 어디 나갔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네요. 나는 다시 그 의원에 들어가 1층을 지키고 있던 꼬마에게 되물었지. 영어를 하지 못하는 아이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어.


"그럼 여기 다음으로 가까운 병원은 어디인가요?"

"멀어서, 걸어갈 수는 없어요... 잠깐 있어봐요, 내가 툭툭을 불러줄테니까."


아주머니가 부른 툭툭에 우리 둘은 올라탔고, 먼지를 가르며 몇 십 분을 달렸어. 하지만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도 문을 닫은 상태. 툭툭 아저씨에게 다시 그 다음으로 가까운 병원을 물어 또 달렸어. 오늘 안에 의사를 만날 수는 있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어. 그렇게 닿은 병원은 건물 반쪽이 공사중.


외국인인 우리에게 눈이 쏠렸고, 네 증상을 이야기하자 직원은 한 진료실로 우릴 안내했지. 의사 선생님이 회의에 들어가셨으니 기다려야 한다고. 세 번째 병원에서 우린 세 번째 기다림을 마주했어. 말하진 않았지만 너는 떨렸을 거야.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 먼 땅에 와서 혹시나 큰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얼마나 초초했을까.




뽀얗게 먼지 앉은 세면대, 앞서 누운 사람의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베개. 여기에서 네가 치료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심란해졌어. 이윽고 기다리던 의사가 돌아왔고, 그는 우리에게 주사를 권했지. 우린 고개를 저으며 병원에서 뒤돌아 나왔어.


너는 사실 그때 너무 아파 여행을 제대로 못 했다고 말했어. 그것도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 한참이 지나서야 말이야. 한국 병원에서 '그동안 많이 아프지 않았어요'라고 물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내 여행을 같이 망쳐버릴까봐 참았던 거겠지. 한국에 돌아오고 이틀 뒤 맹장 수술을 하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이틀이 늦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어쩌면 넌 그때의 라오스를 떠올릴 때마다 여행을 망쳤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아. 건강하게 돌아왔으니까. 조금 망쳐도 조금 아쉬워도 괜찮아.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