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때] 여행 그리고 '배낭'의 낭만
'캐리어 vs. 배낭'
20대 시절 나의 선택은 무조건 '배낭'이었다.
밑바닥부터 위까지 차곡차곡 채운 38리터짜리 배낭을, 현관 앞에 서서 오른팔로 부웅~ 돌려 등에 멜 때의 기분은... 참으로 묘하다. 등에 착 달라붙은 배낭의 등짝이, 어깨를 짓누른 그놈의 무게가 '이제 시작이구나' 싶다.
튼튼한 운동화를 신고 배낭을 둘러멘 채 거리로 나서면 그때부터 가슴이 벌렁벌렁 거린다. 어깨부터 발바닥까지 전해지는 배낭의 무게에 마음은 훨훨 가벼워지는 기분. 맘 같아서는 길 가던 사람들을 붙잡고 '저 오늘 떠나요' 외치고 싶어진다.
계단을 가든 자갈길을 가든 오롯이 내 짐을 책임질 수 있다는 든든함과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나라에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 짐 정도는 문제없다는 안심도 함께다. 바퀴가 빠질 걱정도, 양 손으로 짐을 들지 못해 절절맬 걱정도 없다.
왜,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적 있지 않나. 자기 머리까지 오는 높이의 커다란 배낭을 메고 태국 카오산로드를 걷는 여행자들의 사진을 보고 두근거렸던 경험. 내겐 배낭이 여행, 자유, 낭만, 모험, 도전, 젊음....... 그런 것들이었다.
그렇게 배낭을 사랑하던 내가 30살이 넘어가면서 슬슬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에 떠난 인도 여행 땐 모두 합쳐 14kg이 되는 배낭을 앞뒤로 메고 두 달 동안 다녀도 끄떡없었는데, 이젠 가까운 제주도를 갈 때도 어깨에 올라간 배낭이 부담스럽다. '배낭 못 메겠어, 캐리어 써야 할까봐'라는 생각이 들 때면 쓸쓸해지기까지 한다.
캐리어로 슬슬 옮겨가는 내 시선을 붙잡는 건 다른 여행자들이다. 마른 몸에 백발을 하고 자신의 가방을 등에 메고 걸어가는 서양 '노인' 여행자들. 여행지에서 그들을 만날 때면 괜시리 내 마음이 다 뭉클하다.
인도에서 혼자 여행 중인 60~70대의 캐나다 할머니를 만났을 때에도,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긴 치마 차림에 양손에 스틱을 쥐고 계단을 내려가던 할머니를 만났을 때에도 가슴 한켠이 설렜다. 카오산로드를 걷는 청춘들의 뒷모습 만큼이나 멋있었다.
그래, 그래도 배낭이다.
배낭을 메야 느낄 수 있는 기분, 만족감, 설레임이 나는 너무 좋다. 조금씩 짐을 빼고 무게를 줄이면, 나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배낭 여행자'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구릿빛 피부에 하얀 머리를 하고 등엔 배낭을 멘 내 모습...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배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