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AI 시대, 언어의 끝에서 다시 길 위로

by Hemio

2024년 2월, OpenAI가 공개한 Sora ai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텍스트가 현실과 같은 영상으로 변환되는 모습은 기술적 진보의 눈부신 증거였지만, 내 안에는 경탄과 함께 깊은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그 두려움의 근원은 복합적이었지만,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컴퓨터가, 그것도 ‘언어’를 매개로,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물리적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사실 때문이었다.


당시 개발자로 일하던 나는, 언젠가 코딩이라는 행위마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었던 창작과 문제 해결 능력마저 넘보는 시대. 이는 자연스레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인간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체 불가능한 인간만의 오리지널리티는 과연 존재하는가?"


혼란 속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명제,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는 약 6년 전, 지인들과 AI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던 기억과 맞닿아 있었다. 당시 내가 내렸던 잠정적 결론은 이러했다. "눈을 감고 상상하는 모든 것, 그것을 정보화하고 외부 세계에 구현하는 일은 언젠가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연주자의 손길을 상상한다. 이때 상상의 폭과 깊이 그리고 상상력의 해상도는 결국 개인이 가진 지식과 경험, 즉 ‘언어’의 테두리 안에서 결정된다. 나의 언어가 곧 나의 세계인 셈이다. 심지어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에서 음악을 느끼고, 그 향기에서 선율을 떠올리는 공감각적 체험마저, 언젠가는 알고리즘으로 모사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AI가 인간의 지적 활동 대부분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도달한 잠정적 해답은 '세계관의 확장'이었다. 단순히 책을 읽고 영상을 보며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은 이미 AI가 훨씬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영역이었다. 그렇다면 인간 고유의 방식으로 세계관을 확장할 방법은 없을까? 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사랑받은 콘텐츠들을 떠올려 보았다.


놀랍게도, 우리가 열광하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여정(Journey)'이 있었다. 내

가 가장 사랑하는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는 잃어버린 동생의 몸과 자신의 팔다리를 되찾기 위한 형제의 기나긴 여정을 그린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역시 산티아고라는 양치기 청년의 자아 발견 여행기이다. 성경 속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 걸리버 여행기, 서유기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끊임없이 길을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에 매료되고 갈증을 느껴왔다. 현대의 유튜브 생태계에서도 여행 콘텐츠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갈망이 시대와 매체를 초월하여 보편적임을 시사한다. 어릴 적, TV 앞에서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시작되면 채널을 고정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이제야 비로소 납득되었다.


단순한 휴양이나 관광이 아닌, 어쩌면 현실로부터의 ‘도피’일지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도피야 말로 여행에서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걷기 광이였던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걷지 않고 사유한 것들은 의심하라."
나는 일을 할 때 그리고 무언가 고민할 때. 그 생각의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우선 그 공간을 벗어난다. 나는 공간이 나를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걷기는 일종의 그 공간에서의 도피인 셈이다. 그렇게 나는 짧은 도피성 여행을 했던 것이였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경로를 따르는 수동적 체험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마주하며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는 능동적 행위 그 자체였다. AI가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세상을 모방한다 해도, 직접 바람을 맞고 낯선 길 위에서 길을 잃고, 예기치 못한 만남을 통해 변화하는 ‘나’라는 존재의 생생한 경험까지 복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즉시 당근 거래를 통해 작은 오토바이, 슈퍼커브 (무복씨 무사복귀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다.)를 마련했다. 그렇게 약 한 달간의 전국 일주를 시작했다. 그것은 AI 시대, 언어의 한계 너머에서 인간 고유의 오리지널리티를 찾기 위한, 저만의 작은 여정의 시작이었다. 길 위에서 마주할 세상과, 그 안에서 변화해갈 내 이야기가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긴 셈이었다.


이번 봄에도 전국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이번 여행기는 브런치에 하나하나 써보려고 한다.
출발
고창
고창-목포
제주
해안가 도로 변의 모래 때문에 슬립했다 ㅠ
여수
삼천포 - 통영
본가도착(대구)
경주-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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