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태신앙인이었다.

어린시절, 나는 부모님을 교회에 빼앗겼다.

by Hemio

어린시절

나는 디즈니 만화동산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일요일 아침은 늘 부산했다.

어머니는 먼저 일어나 옷을 다림질하고 아침을 준비했다.
아버지는 성경책을 꺼내 조용히 무언가를 외웠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교회.


그 시간은 가족의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족이 흩어지는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각종 봉사,

아버지는 남성 선교회 회의,
나는 초등부 예배실,

동생은 유년부 한구석에 던져졌다.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에 있었다.
같은 공간 있었지만, 함께가 아니었다.


교회는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라고 배웠지만,
정작 나는 가족과의 나들이,
일요일 아침을 느긋이 보내는 여유,
부모님과 떠나는 여행들을
점점 잃어갔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은 없었다.

나는 모태신앙이었다.


교회는 우리의 휴일을 점령했다.

아니 점점 우리 삶을 갈취해갔다.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토요일 성가대 연습,

금요 구역예배,

주일예배...

거기엔 “하나님을 위한 삶”이라는 거대한 명분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부모와의 시간, 어린 나의 감정, 가족의 일상을
하나씩 헌납해야 했다.


나는 하나님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나는 늘,
내게서 가족을 빼앗아 가는 존재로서의 교회를 느꼈다.
신앙은 개인의 자유라지만,
그 신앙이 가족 전체의 삶을 삼켜버리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믿음'이 아니라
구조적인 소외였다.


우리는 주말마다 교회로 출근했고,
가정은 '교회의 부속실'처럼 여겨졌다.
그토록 강조하던 "가정의 회복"이라는 말은,
교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더 멀어졌다.


어린 시절 나는 묻고 싶었다.
“하나님은 정말,
아버지의 퇴근 후 웃음보다,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보다,
내가 기다리던 가족과 시간보다
더 중요한 분인가요?”


이제 나는 안다.
신앙은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진짜 예배는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정직한 시간 안에도
깊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을.


다시는 어떤 아이도
가족의 이름으로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서,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신을 향한 믿음과
사람을 향한 사랑은
절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 사이를 잇는 것이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신앙의 진심이다.


지금은 거의 20년이 지난 일이지만,

사실 지금도 부모님과 휴일을 보내면 어색하다.


만약 이 글을 보는 목회자가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주일성수를 의무감으로 지키려하지 마세요.
간혹은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도 괜찮습니다.


더 이상 교회에 나의 아버지를 나의 어머니를 빼앗겼다고 느끼는 아이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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