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예술, 감동은 진짜인가?

우리는 지금, 감동의 조건이 다시 쓰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by Hemio

AI가 만든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시를 읽고 마음이 움직이며, chatGPT를 통해 상담하고 위로를 받곤한다. 그러나 그 감동이 AI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우리는 살짝 뒤로 물러서게 된다.


“감동은 진짜였을까, 아니면 속은 걸까?”


이 질문은 단지 AI의 창작 능력을 묻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감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묻고 있는 것이다.


감동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심리학자 리처드 라자루스는 감정을 ‘자극’이 아니라 ‘해석’의 결과라고 했다.
음악 한 곡, 한 편의 시, 그림 한 장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울리는 것은 단지 사운드나 형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가 읽어낸 의미, 우리가 붙잡은 맥락이다.


AI가 만든 음악에서도 우리는 울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이 가라앉은 후, “그걸 AI가 만들었다더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감정의 무게는 달라진다.
감동은 여전히 ‘진짜’겠지만, 그 진실성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것이다.


감동은 반드시 ‘의도’를 전제로 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조용히 반문할 수 있다.


우리는자연을 보며 감동한다.
의도를 가진 창작자는 없다.
우리는새소리를 음악처럼 듣고,
바람의 소리를 음색처럼 기억한다.
우리는 성찰 없이 던진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무심한 쪽지 한 장에서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감동은 언제나 정제된 의도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때로는, 감동은 의도가 없기 때문에 더 깊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오히려 자신의 해석과 감정에 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만든 예술도 어쩌면 그러한 감동의 한 방식일 수 있다.
무의도적 창작물이, 해석을 통해 감정으로 번역되는 경험.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질문 하나


예술은 단지 감동을 유발하는 장치일 뿐일까?

우리는 종종, 감동의 순간에 그것을 지탱할 서사를 원한다.


“이 곡은 어떤 사람의 고통에서 왔을까?”
“이 문장은 작가가 어떤 순간에 썼을까?”


AI는 이 서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의식도, 고뇌도, 생애도 없다.
그로 인해 우리는 감동받은 자신을 정당화할 내러티브를 잃는다.
그 감동은 마치, 이름 모를 바람이 스쳐간 것처럼 사라질까 두렵다.


속았는가, 감안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AI 창작물에 감동한 뒤 AI인 줄 알게 되면 “속은 기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의적 기만 때문이 아니다.


“내가 상상한 배경과 실제가 달랐다”는 실망일 뿐이다.


그럴 때 우리는 감정을 포기할 수도,
혹은 새로운 해석 위에 다시 감정을 얹을 수도 있다.


감동은 ‘속은 것’이 아니라,
감안하며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감동 앞에선 의심도 때로는 장벽이다


기술 시대의 감상자는 점점 더 ‘출처 탐정’이 되어갈 것이다.

이건 사람이 만든 음악일까?
이 글은 누구 손에서 나왔을까?


우리는 점점 감동 이전에 분석하고,
느끼기 전에 해석하고,
공감하기 전에 회의한다.


하지만 예술은 본래 즉각적인 수용의 문법으로 작동한다.
정보는 해석을 풍성하게 하지만, 감동은 ‘열린 마음’에서 시작된다.


감동은 어쩌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다


AI가 만든 예술에 감동한 당신은 속은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은 여전히 당신 것이고, 충분히 아름답다.


단지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하고 싶은가?”


예술은 인간의 것이다.
하지만 감동은 더 이상 그 경계를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을 닮은 기계가 감정을 유발하고,

사람은 그 감정을 해석하며 삶의 단서를 찾아간다.

감동은 조작이 아니라, 수용의 태도 속에서 살아나는 감정이다.


예술의 미래는 누가 창작했는가보다,
그 감동 앞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머무는가에 달려 있다.



영화 "광해"에서는 왕을 지키는 "도부장"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이미 도부장은 자신이 마지막에 보냈던 사람이 진짜 광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을 희생해서 가짜 광해를 지킨다.

가짜 광해를 쫓던 무사가

도부장. 그자는 가짜요. 임금이 아니란말이요!

라고 말하자, 도부장은 이렇게 답한다.

그대에게는 가짜일지 모르나, 나에겐 진짜다.

그렇게 도부장은 가짜였던 광해. 아니, 본인에게는 진정한 군주였던 자를 위해 희생한다.



chatGPT가 소설과 시를 쓰고,

suno ai가 음악을 만들고,

Midjourney가 그림을 그리고,

Veo2가 영상을 만들어도.


그 결과물이 마음을 울린다면,
나는 기꺼이, 당당히 감동할 것이다.

감동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해석, 나의 삶 속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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