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예술이 되기까지, 반복되는 경계의 진화
"그냥 딸깍한거 잖아."
AI로 생성된 음악, 그림, 문학을 마주한 사람들은 종종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놀라울 정도로 익숙한 역사적 반응이다.
1839년, 루이 다게르가 세계 최초의 사진술을 발표했을 때도, 사람들은 말했다.
“이건 예술이 아니다. 기계가 한 일이니까.”
기술에서 예술로
1839년, 프랑스의 루이 다게르는 은판 위에 빛을 담는 기술인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을 발표했다.
정확한 재현력과 뛰어난 선명도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술계는 이를 예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가는 회화의 대체자가 아니라, 단순한 기술자로 여겨졌고, 예술은 여전히 인간 손의 흔적을 요구했다.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는 헨리 폭스 탤벗이 '칼로타입(Talbotype)'을 발명했다. 그러나 프랑스에 선수를 빼앗긴 대영제국은 이를 단순 기술 경쟁으로 보지 않았다.
영국은 자국의 기술을 단순한 산업이 아닌 예술로 리프레임하기 위해 적극적인 문화 정책을 펼쳤다.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 사진을 중심 콘텐츠로 한 ‘사진대전(Great Photography Exhibition)’ 개최
1858년 국제사진전: 정부와 귀족들이 사진작품을 대량 구매하여 ‘수요 기반의 예술성’을 입증
예술 사진의 제도화: 사진학회와 관련 교육기관 설립으로 창작자로서의 사진가 정체성 확립
결과적으로 사진은 단지 현실을 복사하는 기술이 아니라,
프레임을 설정하고 순간을 선택하는 '의도의 도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AI 모델은 단지 학습된 정보를 출력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입력된 프롬프트에 따라 수많은 잠재적 결과 중 하나를 '선택'하여 형상화하는 '의도된 프레임'의 기계다.
사진기 역시 현실을 그대로 찍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점을, 어떤 구도로, 어떤 노출로 담아내는지를 결정함으로써 창작자의 시선을 드러내는 장치다.
우리가 여전히 AI의 창작을 예술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술을 인간 고유의 감정과 고통, 체험의 산물로 여기는 전통적 미학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자면, 예술은 늘 기술과 함께 진화해 왔다.
활판인쇄술이 등장했을 때 시인은 죽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는 오히려 대중 속에서 꽃피웠다.
전자음악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기계의 소리"라며 외면받았지만, 지금은 클래식 공연장에서조차 그 위력을 인정받는다.
AI 모델도 지금은 '다게레오타입' 초기의 위치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이 기술을 통해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감정을 구성할 수 있는가"를 묻기 시작해야 한다.
사진가가 피사체를 정하고, 구도를 잡고, 빛을 기다리는 행위처럼
AI 사용자도 프롬프트를 조정하고, 결과를 수정하고, 새로운 의미를 실험한다.
"실행자"가 아닌 "의도를 만드는 자",
"출력자"가 아닌 "맥락을 조율하는 자"로서 창작자는 살아남는다.
AI의 결과물은 초안이다.
진짜 예술은 그 결과물 중 어떤 버전을 채택하고,
무엇을 덜어내고, 어디에 맥락을 부여하는가에서 완성된다.
이는 결국 인간의 감식안, 해석력, 미적 판단의 문제다.
즉,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예술이 될 수도, 단순 출력물이 될 수도 있다.
다게르의 은판이 그러했고, 탈보트의 네거티브가 그러했듯,
AI 모델 역시 기술이 예술로 도약하기 위한 일시적 위기와 혼란의 경계선에 서 있다.
사진이 결국 회화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의 장르로 공존하게 된 것처럼,
AI 창작도 인간 예술가의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확장 장치로 자리 잡을 것이다.
AI는 눈이 아니다. 그러나 시선을 확장시킨다.
AI는 손이 아니다. 그러나 표현을 추상화한다.
중요한 건 "기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인간의 의도, 감정, 판단이 얼마나 투영되었는가다.
카메라를 활용한 사진은 예술이 되었다.
AI를 사용한 작품도 예술이 될 것이다.
아니, 이미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