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Y Works

바실리 칸딘스키를 위한 목관 3중주

Moon Shadow 2012作

by Hemio

바실리 칸딘스키를 위한 목관 3중주 작품 해설 2012作



1. 예술·철학적 원류


바실리 칸딘스키는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1)에서 색채·형태가 ‘외적 현실’이 아니라 ‘내적 필연성(innere Notwendigkeit)’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감각적 경험을 넘어선 영적 진동을 예술의 궁극적 과제로 보았고, 이를 위해 음악적 개념(리듬·하모니·선율)을 회화 언어에 이식했다.


2. 색채와 소리의 상관성


칸딘스키가 언급한 ‘색채의 음향’은 실제로 색을 들을 수 있는 공감각(synesthesia) 경험과 결부된다. 그는 노란색을 ‘높은 트럼펫’, 파란색을 ‘첼로의 깊은 울림’으로 비유하며 회화·음악 간 매개를 시도했다. 이러한 감각적 교차는 청중이 ‘소리를 보는’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본 곡은 이를 음향 차원에서 재구성한다.


3. 구조적 기저: 12음 기법과 행렬


‘Moon Shadow’는 아놀드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토대로 한다.
P0(C‑E‑Db‑Eb‑D‑B‑F‑Bb‑Gb‑A‑G‑Ab)를 출발점으로 전위(I), 역행(R), 역전위(RI)를 포함한 48가지 변형을 12×12 행렬로 조직했다. 이 행렬은 모든 음이 동등하게 등장하도록 보장하면서도, 각 변형 간의 대칭·회전 관계가 곡 전개를 위한 서사적 긴장과 해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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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행렬에서 주황색이 플룻, 하늘색이 클라리넷이라고 한다면, 두 선율은 반음계, 다른 방향성의 대위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보다 대위적이고 독립적인 방향성을 제공할 수 있다.


4. 조합론과 형식적 서사


행렬 내부의 헥사코드 보수쌍(combinatoriality)을 활용해 두 성부만으로 12음을 완결시키는 구간을 배치했다. 이는 칸딘스키가 추구한 ‘형태 간 긴장과 균형’에 대응하며, 청중은 서로 다른 음색·위상으로 제시되는 동일 음렬을 통해 시각적 추상의 ‘다중 투영’을 청각적으로 경험한다.


5. 음색 설계: 목관 3중주의 철학


플루트·클라리넷·바순은 음역·공명 구조가 상이해 ‘음색적 대비’를 선명히 드러낸다. 플루트의 투명한 고역, 클라리넷의 중음역 유연성, 바순의 저음역 깊이는 행렬상의 선형·대위적 패턴을 서로 다른 색조로 채색한다. 이는 ‘빛과 그림자’의 양극을 회화적 배경·전경 관계처럼 배치하는 데 핵심적이다.


6. 다이내믹·아티큘레이션의 ‘달 그림자’


작품은 달 주기를 은유한 세 개의 큰 호로 구성된다. 각 호의 정점마다 강한 포르티시모가 ‘만월의 광휘’를, 직후의 급격한 디미누엔도는 ‘월식의 그림자’를 형성한다. 이때 행렬의 좌표(행·열 번호)에 따라 음량·아티큘레이션을 매핑해 구조와 표현을 통합했다. 칸딘스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진동’을 음향적 명암(明暗)으로 구현한 셈이다.


7. 청취 지침과 존재론적 함의


‘Moon Shadow’는 전통적 조성 감각을 거부하고, 음렬·음색·공간 배치를 통해 ‘현현과 은폐’의 변증법을 탐구한다. 이는 칸딘스키가 색채로 제시한 ‘순수 형태’의 영적 울림을 소리로 치환하는 과정이며, 청중은 음향 속에서 색채의 잔상을, 침묵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선을 상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본 곡은 “소리가 되는 그림”이자 “그림이 되는 소리”라는 다중적 존재론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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