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지내는 동안 평생을 한국에서만 지내왔던 터라 전혀 다른 문화권 속에서 충격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팔뚝보다도 작은 크기의 신생아를 안고 쇼핑센터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엄마의 모습이었는데, 갓난쟁이를 안고 갖은 병균이 득실거리는 세상 속에 나와 있는 그녀가 경악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 모습에 혼자 경악하며 저런 모습이 이 나라에서는 일반적이냐고 물었다. 서양문화권의 국적을 가진 친구들은 그런 질문을 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 굴었고, 아시아 문화권에서 자란 친구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노라고 말했다.
충격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 내가 살던 집의 주인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니, 안젤라가 말했다.
"그럼 엄마는 언제 자신의 삶을 즐겨?"
그녀의 대답을 듣고는 머리가 멍해졌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자란 나는 나도 모르게 여성에게 모성의 책임과 의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비난하고 있던 것이다.
『네 눈동자 안의 지옥』, 캐서린 조
『네 눈동자 안의 지옥』의 작가인 캐서린 조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그녀 자신은 미국인이지만 가족들로 인해 한국사회의 문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버지와의 관계에만 신경 쓰는 어머니 밑에서 가정폭력에 노출되어왔던 그녀는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자신을 사랑해서 폭행하는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그를 감싸는 그의 어머니에게 반발하지 못했다.
다행히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그녀는 안정기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내 아들인 케이토를 낳고서 한국인의 정서가 흐르는 미국인이었던 그녀에게 어려움이 닥친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런던에서 미국까지 긴 기차여행을 택한 그녀에게 한국인 시부모는 그녀를 걱정하기보다는 아이가 잘못되면 어쩔 뻔했냐며 질책한다. 사랑스러운 아들을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을 뿐인데, 자격 없는 엄마처럼 치부된 캐서린은 죄책감과 의아함 속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이어오다 산후 정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 책은 정신병원에서 캐서린이 그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써 내려간 기록이다. 일기처럼 쓴 글들이라 챕터마다 제목이 달려 있는 일반적인 책과는 다르다.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도 캐서린 조 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잃지 않기 위해 쓴 기록은 솔직하고 때론 처절하며, 소중하다.
갑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나’에서 ‘엄마’로 변화하는 것은 낯설고 두려운 일일 것이다.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혼자 살면서 내 한 몸을 제대로 챙기는 것도 버거운 내가 한 생명을 키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옛날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아름답고 행복한 ‘이상적’ 가정을 꾸리는 일은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고 기록하여 세상에 내어놓은 캐서린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감추고 외면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전통적으로 강요된 모성으로 여성을 어머니라는 프레임 속에 가둘 수 있을까. 현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 변화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