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체 근무하면 알게 된다. 새해, 명절, 어린이날, 여름휴가 기간, 크리스마스, 연말 등 미친 듯이 바쁜 특정한 날이 있다. 이런 날은 본사도 본사 나름대로, 매장은 직원과 아르바이트가 총동원되며 꽤 긴장된 상태로 일한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매장에 사람 목소리 보다 주문을 알리는 알림음이 더 많이 울렸고,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장 뒷문이 벌컥 열리면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야! 점장 나오라고 해!!"
직원들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떤 아저씨가 손을 허리에 대고 씩씩대며 서 있었다. 부점장이 대응했다.
"무슨 일이시죠?"
"내가 음식에서 머리카락 나왔다고 바꿔 달라고 했는데, 왜 안 바꿔주는데?"
"손님, 그건 직원 머리카락이 아니라는 걸 서로 확인하고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내가 안 끝났어! 점장 나오라고 해!"
화가 났지만, 꾹꾹 눌러 담으며 내가 나갔다.
"무슨 일이시죠?"
"당신이 점장이야?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말하는데, 왜 자꾸 아니라고 하는 거야? 내가 거짓말한다는 거야?"
"조금 전에 저희 직원이 말씀드렸듯, 매장 실수가 아님을 서로 확인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나요?"
"끝나긴 누구 마음대로 끝나! 당장 제대로 사과해! 내 앞에서 무릎 꿇어"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확인 절차를 거쳤고, 마무리 지었는데 이제 와서 무릎을 꿇으라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끝까지 참지 못한 나는 결국, 퇴사를 각오하고 그 사람과 싸우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직원들이 나를 말렸고, 부점장이 손님을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한참 후에 부점장이 들어와서,
"점장님, 괜찮으세요? 제가 손님이랑 얘기 잘해서 보냈어요."
그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러나 억울했다. 우리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묶고, 모자를 쓰고 있어서 머리카락이 음식에 들어갈 확률이 몹시 낮다. 혹여 들어갔다 하더라도 인정할 수 없었다. 그 음식에서 나온 머리카락은 노란색이었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머리카락은 검은색과 갈색이었기 때문이다.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야 했지만, 매장 뒷문만 봐도 난동 피운 아저씨 모습이 생각나서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불같은 성격을 가진 나 때문에 대신 고생한 직원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똑같은 상황이 와도 내 행동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다 보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다. 그리고 비상식적인 사람도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고, '진상 없는 세상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최근 이런 진상들을 세상에 알리는 프로그램, '진상월드'가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 최초 '진상' 추적 프로그램으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 예의와 배려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그날까지!라는 기획 의도를 갖고 제작됐다. 특히 우리가 자주 방문하는 지하철, 편의점, 식당 등에서 진상을 볼 수 있었다. 방송을 보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사람은 왜 점점 많아지는 걸까?'라는 생각에 혈압이 올라가고 있었는데,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의 말에 뛰는 심장이 진정될 수 있다.
진상 손님을 마주하면 화나고 어이없고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견딜 수 있는 이유!
1%의 진상을 견딜 수 있는 것은, 99%의 손님들 덕분입니다. (진상월드 '6회')
그래! 맞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상식이 통하고, 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배려하는 세상이 빨리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