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슈룹 Oct 19. 2022

직장 상사보다 경력 많고, 학력이 높으면...

망한다.

최근 출신지, 학력, 성별을 밝히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 늘어나면서 표준이력서를 받는 곳이 많아졌다. 따라서 이력서는 경력 위주로 작성한다. 이 과정이 평등하고 차별 없는 채용을 하는 데 장점일지 모르나, 때로는 채용 이후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된 나는, 9년의 시설장 경력을 뒤로하고 일반 직원으로 그럭저럭 일하고 있었다. 근무한 지 며칠 지났는데, 신입 직원의 학력을 전산에 입력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래서 시설장에게 내 학력을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됐다.


"선생님, 최종 학력 얘기해 주세요"

"아!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대학원 졸업했어요"

"석사 졸업한 거죠?"

"아뇨. 박사인데요"

"그럼 박사는 수료죠?"

"아니요, 졸업인데요"

"박사를 졸업했다고요? 공부 많이 했네요. 그런데 왜 여기 있어요? 강의해야지?"

"....."


직장 상사의 말투, 분위기 등 저의를 생각하느라, 딱히 반응을 잇지 못했다. 학력을 과시하러 아니라, 현장에서 아동을 만나기 위해서 다. 엄청 유명한 학교가 아닌 이상 대학원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갈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자랑거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서 굳이 말하지 않는다.


물론 직장 상사의 행동과 말에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어서 벌어지는 일을 생각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인사도 하지 않고, 수업태도가 엉망이고, 놀이를 하고 놀잇감 정리를 하지 않아 쫓아다니며 정리해야 하는 상황 등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규칙을 정해야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시설장이 아니기 때문에 꽤나 예민한 부분이다) "사람이 바뀌니까 아이들이 적응하느라 그렇다"라며 화살이 나에게 꽂혔다. 새로 온 사람 때문에 아이들이 잘해 루틴이 깨졌다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밖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모두 표현할 수 없으며 내가 다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화합을 말하면서 차별이 깊게 내재되어 있는 이중 메시지를 던지고, 겉으로 직원의 성장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속으로 피해의식을 품고 있고,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일상 곳곳에서 표현하는 직장 상사의 모습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너무 쉽게 생각한 나의 오만함도 거둬야겠지만, 내가 바라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정리가 답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