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시선에서 시작한다.
르네의 그림 중 비교적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프로 레슬러의 죽음'은 많은 것을 의미하는 그림이다. 초현실주의 그림은 비유와 상징을 통해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작품 의도를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화풍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살펴보면 방안 가득 빨간 장미로 채워져 있다. 다행히 창과 커텐이 있어 그 답답함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지만, 공간을 어떤 사물로 가득 채우면 다른 것을 가져다 놓지는 못할 것이다. 붉은 장미는 일반적으로 정열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방안 가득 붉은 장미를 가슴에 품고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다시 말해서 열정적인 사랑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사랑의 충만함으로 축복과 기쁨만이 내 가슴 속에 있을까?
공간이 존재하는 대상으로 채워져 있다면 오로지 그 대상만이 공간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대상을 들여놓을 공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라는 자아조차도 공간 안에 들어갈 틈이 없다. 사랑하는 대상과 대상을 사랑하는 열정만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오로지 그 대상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의 존재조차도 소홀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흔히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표현을 살펴보면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느니, 하루 종일 당신 생각뿐, 잠 못드는 밤...등을 통해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자신의 생활리듬은 깨지고 늘 하던 일도 잘 되지 않고..오로지 대상에 대한 생각으로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렇다면 왜 '프로레슬러의 죽음'일까? 프로라 하면 어떤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프로 선수의 죽음은 이미 뛰어 난 자신의 재능을 잃어버렸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랑의 선수인 '카사노바'를 보면, 그는 많은 여인을 유혹하고 그 여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지만(일명 바람둥이) 특정한 한 여인을 사랑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의 프로이다. 하지만 그런 카사노바가 한 여인을 마음에 두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열정으로 다른 여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여인을 향한 프로선수로서의 작업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카사노바를 우리는 프로라고 할 수 없다. 선수로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한다. 그것이 신에 대한 사랑이든, 에로스적 사랑이든.. 사랑이라는 감정은 자아를 잃어버리기에 충분하다. 늘 대상에 대한 열정과 그리움으로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바람처럼 스쳐갔던 사랑의 기억과 추억.. 잠시 되돌아 생각해보면 후회라는 감정을 유발하게도 하고, 왜 그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을까라는 자책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자신이 아름다웠던 적은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물론 외형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을 모두 내포하는 것이리라.. 대상에 대한 사랑으로 얼마나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는가를 생각해보면 자아를 잃어버려도 될 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나는 깨닫고 알아차린다.
2015 년 11월 12일 회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