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회월 Dec 24. 2023

손톱

그녀의 작업

"손이 참 예쁘세요.

표면 정리도 해드릴까요?

무슨 색 바를지 잠시 고르고 계세요.

요즘 트렌드는요."


궁금하지도 않은 것을 쉴 새 없이 묻는다

그게 삶의 방식인 것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어린 그녀는 너무 빨리 알게 된 듯...

                                       

손톱


                         회월


동네 어귀, 철거를 앞둔 재래시장

뭉턱뭉턱 잘려 나가는 닭대가리들

내장을 후벼 파는 여자 손의  퍼런 힘줄이 도드라져 보인다

죽은 피의 색깔만큼 짙은 손톱에

붉은 철쭉 꽃잎이 뚝뚝 떨어진다

 

지렁이 한 마리 잡지 못했던 시간을 지나

단두대의 집행관처럼 내려치기를 수백 번 아니 수만 번

검은 옷의 재판관과 젠가 게임을 하는 여자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자귀 난 짐승처럼 밥을 먹어치우리라


어릴 적 엄마는

여자는 손이 예뻐야 잘 산다고 했다

손톱은 여자의 살아 온 길이라고

 

낮 소주 석 잔에 손톱만큼 붉어진 얼굴로

거미가 집을 짓지 않는다고

꽃피는 건 잠시,

시들고 마르고 얼어붙는다고

내 새끼 한번 품어보지도 못했다고

소리 없이 떨어지는 묽은 방울들


오늘도

난전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잘 다듬어진 가위로

손톱을 만지는 여자

지나온 시간만큼 두터워진 내 손에서도

종잇장 부비는 소리 들린다


작가의 이전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