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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곰 Aug 14. 2019

잔망스런 이야기 9

의외(意外)

6학년 때, 자전거를 배웠다. 친구들 중, 나만 자전거를 못 탔다. 집에 자전거가 없어서 친구들 자전거를 빌려서 배웠다. 학교가 끝나고 운동장에서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자전거를 잡아줬다. 초짜의 자전거는 힘만 들어가고 자꾸 옆으로 기울어서 뒤에서 잡아주기가 쉬운 게 아닌데 도와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특히나 키 가 큰 친구 E가 많이 도와줬다. E는 손잡이가 염소 뿔처럼 안으로 휜 사이클 자전거(오빠 거라고 했다)도 잘 탔는데, 운동장에서 늦게까지 내 자전거를 잡아줬다.     


자전거를 타게 되자, 하루 종일 자전거만 타고 싶었다.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여태까지 몰랐을까. 자려고 누우면 빨리 내일이 왔으면 싶었다. 아빠한테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예쁜 새 자전거를 탈 날을 고대하고 있는데, 아빠는 친구 분한테서 낡은 자전거를 얻어왔다. 처음엔 그런 거 타는 거라면서. 그 자전거는 창고나 대문간 어디에 존재감 없이 있다가 내 호출에 새 삶을 얻은 게 분명한 몰골이었다. 사고 나면 아빠가 책임지라고 했더니 따릉따릉을 하나 달아줬다.    


자전거는 신세계였다. 분명, 내가 내 다리로 굴러서 타는 장치였지만,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뭔가 내 힘 바깥의 세상 같았다. 특히나 친구들과 단체로 운동장을 달리거나 좀 먼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아직 차들이 다니는 길은 무서웠다. 도로포장 공사하는 트럭들이 많아서 더 그랬다. 거기다 시골은 갓길이 좁아서 잘못하면 논에 처박힐 수도 있었다.    




한 번은 소재지에 자전거를 타고 나갔는데, 장날인지 그날따라 사람들이 많았다. 차와 사람을 요리조리 피해서 막 오른쪽으로 도는데 뭔가에 놀란 내가 왼쪽으로 내달렸고 가게 앞에서 택시 바퀴를 고치고 있던 아저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아저씨는 불 같이 화를 냈다. 자전거와 함께 나가떨어져 처박혀 있는 건 난데, 그냥 봐도 아무렇지 않은 아저씨는 당장에 나를 경찰서에 넘길 기세였다. 손에는 연장(몽키 스패너?)까지 들고 있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그만하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당황하고 겁이나 울고만 있었다. 그 아주머니가 나를 일으켜 세워 옷도 털어주고, 자전거도 괜찮은 거 확인해서는 얼른 타고 가라고 미셨다.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왔다. 서럽고 아프고 무서웠지만, 엄마한테 말할 순 없었다. 자전거를 못 타게 할까 봐 더 말 못 했다.     




혼자, 어디를 가야 할 일이 있었다. 걱정된 엄마가 택시를 불러서 기사 아저씨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부탁했다. 그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나를 몰라봤다. 가는 내내 내 얼굴은 굳어있었다. 아저씨는 친절했다. 몇 학년인지 묻더니, 자기 동생이 나랑 같은 학년이라며 이름을 말했다. 듣고 보니 그 남자애랑 무척 닮았다. 그렇다면 그닥 아저씨도 아니라는 얘기다. 분명 작은오빠 후배다. 작은오빠한테 말해서 확!..... 

룸미러로 내 얼굴을 자꾸 보는 아저씨를 째려보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데, 문득 이 아저씨가 정말 나를 못 알아보는 것이 맞나 싶었다. 그때, 나를 똑바로 노려보던 살기 등등한 그 눈빛을 선명히 기억하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는 나를 못 알아본다고?


아저씨는 도착할 때까지 참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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