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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곰 Aug 14. 2019

잔망스런 이야기 8

복수


막 6학년이 돼서 전교 어린이 회장 투표를 하는 날, 담임 선생님이 나와 우리 반 임원한명을 교무실로 불렀다. 우리 반 반장인 D를 전교회장에 ‘추천’하라고 했다. 심지어 그 자리에 D도 있었다.     


“D, 공부도 잘하고, 반장이고 딱이지 ”    


딱 이긴 뭐가 딱 이야. 벙쩌서 있는데, D는 표정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어쩜 우릴 불러서 저런 말을 저리 태연히 할 수 있는가, 이럴 거면 투표를 뭐 하려 하는가. 입맛이 썼다.




전교회장 투표는 각 학년 임원단들이 음악실에 모여서 했다. 누가 D를 추천할 것인가를 두고 서로 미루고 있었는데, 우리 동네 사는 5학년 남자애가 갑자기 나를 추천했다.    


‘엥!’    


그래 투사는 시대가 만드는 거다. 

갑자기 없던 명예욕, 승부욕이 활활 타올랐다. ‘왜 여자는 항상 부반장, 부회장만 해야 하냐고, 한 번 시켜나 봐야지, 시켜보지도 않고... 여자도 잘할 수 있다!’ 고 난 울분을 토했다.


담임 선생님은 멘붕이 온 것 같았다. D가 아니라 내가 전교회장이 돼서 온,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단 얼굴이었다.(일등 공신이 담임 선생님 본인 인 걸 알까) 어쩌라고? 우린 분명 추천했다고! 밀어주기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장 선생님은 좋아하셨다. 읍까지 통 털어도 우리 학교가 최초의 여자 전교회장을 배출했다며, 자랑도 하셨다고 했다. 최초의 뭐가 되고 싶단 생각을 1도 해 본 적 없는 나였지만, 좋았다. 교장 선생님이 시키신 심부름을 하느라 수업시간에 좀 늦게 들어갔다. 담임 선생님은 먹이를 빼앗긴 산기슭의 하이에나 같은 눈빛으로 나를 앞으로 부르더니, 찰지게 손바닥을 때렸다. ‘건방지다’면서.    




더욱 기분이 나쁜 이유는, 담임 선생님 뒤에 D의 엄마가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았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반 아이들 부모님들은 학교는 운동회 때와 소풍 때, 딱 두 번만(바쁘면 그마저 패스) 오는 곳으로 아는데, 소재지에서 장사를 하는 D의 엄마는 수시로 학교에 왔다. 운동장 저 끝에서 누군가 보인다 싶으면 어김없이 D의 엄마다. 물론 D가 공부도 잘하고 독서도 많이 하는 괜찮은 녀석인 건 맞지만, 그게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놓고 노골적인 부정선거를 획책한 데 대한 면죄부는 절대 될 수 없다.


한 번은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 한 여학생을 별 일도 아닌데, 시계를 풀고 때렸다. 잘못했다고 하지 않는단 이유였다. 난 경멸이 가득 담긴 눈으로 담임 선생님을 봤다. 끝까지 울지 않고 매를 맞아 낸 그 친구가 대견하고 고맙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간절히 빌었다. 

1. 낼모레 낼모레 하는 담임 선생님의 검불 같은 머리숱이 ‘오늘’ 다 날아가라! 

2. 말라빠진 담임 선생님의 몸뚱이가 더, 더 ‘말라비틀어져서’ 바지통 하나에 두 다리 다 들어가라!     




졸업할 때 보니, 내 바람은 거의 이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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