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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Mar 17. 2022

아기와 소통하는 식사 시간 만들기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식사 시간은 어떨까? 갑자기 입에 들어오는 무언가가 무섭진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으면 웃고, 싫으면 우는 표현이 전부인 아기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배려가 무얼까 고민하다 베이비 사인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겨우 아기 의자에 앉아있는 5개월 아기에게 이유식을 시작한 동시에 매일매일 베이비 사인을 알려주고 반복했다.


"율아, 더 줄까? 더 주세요?" 하고는 양손을 동그랗게 모아 콕콕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식사를 마치면 "율아~ 끝! 다 먹었다." 하고 양손을 반짝반짝 흔들고는 박수를 쳤다. 아기가 혹시라도 헷갈리지 않도록 내 행동에 예외를 두지 않았다. 더 주겠다고 했으면 반드시 하나라도 더 주었고, 식사를 마쳤다는 행동 뒤에는 반드시 식사를 끝냈다.


 친정 엄마는 내 행동을 보고 한참을 웃으셨다. 말도 못 하는 아기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서 먹던 블루베리를 더 달라며 고사리 같은 손을 서로 부딪히는 아기의 모습에 친정 엄마와 아빠는 놀라다 못해 어이없어하셨다. 어느새 주변 어른들도 아기에게 더 먹을 거냐며 의사를 묻는 상황을 보면서 나는 뒤에서 뿌듯해했다.   


 베이비사인을 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아기의 행동에 대한 나의 신뢰였다. 아기가 그만 먹겠다고 하면 더 먹이고 싶어도 주지 않았다.


간식을 일정 양보다 더 먹겠다고 하면 조금만 더 주고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도 "이것만 먹고 끝 하자?" 라며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갑자기 치우는 것보다 말을 해주는 편이 떼를 쓰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는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스스로 그만 먹겠다고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고프다고 칭얼댄 적도 많다. 그럴 땐 귀찮지만 한 번 더 밥을 차렸다. 우리도 식사 시간에 밥맛이 없다가 나중에 배고파질 때도 있으니까. 혹은 아기는 진짜 배고플 때 식사를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식사 시간이 규칙적으로 맞춰졌고 나와 아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소통 창구가 생겼다.


 언제든지 먹을 수 있고, 언제든지 그만 먹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서 일까? 예민한 아기임에도 새로운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도 적은 편이었다. 새로운 이유식 메뉴를 궁금해하고 신기해했다. 이상하다 느껴지면 뱉어내고 다시 먹기를 반복했다. (뱉는 행동도 올바른 발달의 한 부분이다.) 엄마인 나도 아기가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베이비사인은 흔히 아기의 전체적인 식사량이 줄고 식재료에 대한 거부가 심해지는 "밥태기"를 알아채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기는 중기 이유식에 심해졌는데 입자가 점점 커지고 매일 먹는 메뉴가 지겨워진 것 같았다. 막 식사를 시작했는데 양손을 흔들며 그만 먹고 싶다 표현하면 당시에는 '왜 안 먹지? 아픈가?', '배가 고프진 않을까.', '먹어야 크는데.' 라며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밥태기"라는 것을 깨닫고 아기를 믿었다. 대체식(분유, 다른 질감의 메뉴)을 주고 규칙적인 식사 시간을 이어나갔다. (당시 아기는 밥 대신 두부를 좋아해서 두부를 많이 먹였던 것 같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이유식을 잘 먹기 시작했다.



 베이비사인은 정해진 것이 없다. 아기와 엄마와의 약속인 만큼 아기가 편하게 할 수 있는 동작으로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다.


허공에 이야기하는 것 같아도, 이게 진짜 될까? 싶어도, 아기에게 매일 알려주고 이야기하다 보면 언젠간 엄마의 언어를 알아채게 될 것이다. 특히 예민하고 변덕이 심한 아기라면 당장 시도해보자, 답답했던 식사 시간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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