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언제부터‘존재’가되었고,언제부터‘역할’이되었나

옷이 나를 입은 것일까, 내가 옷을 입은 것일까

by Henri

어릴 적의 나는 그냥 '나'였다.

그 사실을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었고,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다.

이름보다 숨이 먼저였고, 어떤 의미가 되기보다 온기가 먼저였던 시절.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도 나는 충분히 온전했다.

존재는 설명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세상이 나를 구체적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이름은 어느새 '자리'가 되었고, 그 자리는 다시 '역할'이 되었다.

나는 점차 질문들에 길들여졌다.

"너는 누구니?"라는 물음에 나의 고유함 대신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다"라는 사회적 기능으로 답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를 '살기'보다 나를 '설명'하며 살게 된 것이.


역할은 마치 옷과 같았다.

처음엔 나를 보호해 주는 든든한 외투 같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몸의 움직임보다 옷의 맵시를 더 신경 쓰며 걷고 있었다.

내가 옷을 입은 것인지,

옷이 나라는 사람을 입고 있는 것인지 그 경계가 흐릿해졌다.


일이 잘 풀렸을 때 느끼는 기쁨은 순수한 환희라기보다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반대로 실수했을 땐 내면이 아프기보다 무너진 체면이 먼저 따가웠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다친 게 아니라, 내가 걸친 역할이라는 옷이 구겨졌을 뿐이라는 것을.

정작 옷 안의 '나'는 방치되어 있었다.


참 바쁘게 살아왔는데,

가끔은 내가 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사회라는 기계를 돌리기 위해 유지되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렇다고 역할을 단칼에 벗어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그 책임감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

다만 문제는 그 자리가 '집'이 되어버릴 때다.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니라,

나를 가두는 벽이 되어버릴 때.


그래서 나는 요즘 의식적으로 '존재로 돌아오는 시간'을 찾는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말 없는 침묵 속에서도 불안하지 않은 순간.

나의 쓸모가 아니라, 나의 숨소리로 나를 느끼는 그런 찰나들.

그때 나는 어떤 이름도 필요 없고,

어떤 역할도 요구받지 않는다.

나는 단지 '여기, 있다'.


아마도 잘 산다는 것은

새로운 역할을 계속해서 얻어내는 과정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역할과 역할 사이의 틈에서,

소음 속에 묻혔던 내 진짜 목소리를 다시 듣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역할을 입고 집을 나선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조용히 바란다.

이 옷들이 나의 전부가 되지 않기를.

옷을 벗으면 증발해 버리는 허상이 아니라,

어떤 옷을 입고 있더라도

그 안에서 꿋꿋하게 숨 쉬는 단단한 알맹이로 남아 있기를.


Henri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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