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음이라는 고요에 대하여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만약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핍된 상태일까 아니면
비로소 자유로운 상태일까.”
이 질문 앞에 서면 마음이 참 묘해진다.
답을 서둘러 찾기보다는 잠시 숨을 고르게 되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건
무언가 모자란 상태가 아니라,
아예 비교할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없는 자리니까.
사실 우리가 느끼는 ‘결핍’은 언제나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갖고 싶은 게 있고,
거기에 닿지 못할 때
비로소 상실의 아픔이 생겨난다.
하지만 태어나지 않은 나에게는
그런 바람조차 없다.
원하지 않으니 부족할 것도 없다.
비어 있지만 아프지 않은 상태.
그건 결핍이라는 단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평온일지도 모른다.
‘자유’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묶여 있던 게 풀려날 때 자유를 느낀다.
하지만 처음부터 묶인 적이 없다면,
풀려나는 기쁨도 알 수 없겠지.
태어나지 않은 상태는 아무런 제약도 없지만,
그렇다고 자유롭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자유를 누릴 ‘나’가 없으니까.
결국 태어나지 않음은
자유도, 결핍도 아닌 것 같다.
그저 이름 붙일 수 없는
깊고 고요한 침묵에 가깝겠지.
마치 노자가 말했던 ‘무(無)’처럼,
비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그런 상태 말이다.
이 질문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결국 시선은 ‘지금의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는가.
나는 정말 어딘가에 갇혀 있는 걸까,
아니면 스스로를 묶어두고 있는 걸까.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겠지만,
다행히 나는 태어났다.
그래서 부족함을 느끼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동시에 더 나은 자유를 꿈꾸기도 한다.
어쩌면 이 소란스러운 생의 한복판에서
잠시 멈춰 서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
그 멈춤의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인간적인 자유가 아닐까 싶다.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