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과 감내를 넘어
이 문장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은 더 이상 질문이라기보다
낮은 호흡에 가깝게 느껴진다.
답을 요구하기보다는
곁에 앉아
나의 숨과 시간을
같은 속도로 세어주는 문장.
존재는 언제나
해석보다 먼저 도착해 있고
설명보다 앞서
이미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증명이라는 말은
늘 바깥을 향한다.
타자의 시선, 사회의 기준,
누군가의 이해라는 조건.
우리는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순간을
자신에 대한 근거로 제출해 왔는가.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의미 있는 존재임을 보이기 위해
말을 더하고, 이유를 덧붙이며.
그 과정에서
존재는 점차 언어에 의존하고
설명 속에 눌려
스스로의 무게를 잃어간다.
고요가 찾아온 밤,
모든 설명이 멈춘 자리에서
이 질문은 다시 남는다.
설명이 사라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로 남아 있는가.
그때 드러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감각이다.
숨이 지나가는 결,
이유 없이 스며드는 슬픔,
말이 되기 전의 기쁨.
이 감각들은
누구에게도 증명되지 않으며
어디에도 제출되지 않는다.
다만 나를 통과하며
존재가 이미 여기 있음을 알려준다.
존재는 증명되지 않아도 분명하다.
빛이 밝음을 설명하지 않듯,
‘있음’은 그 자체로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존재는
언제나 가볍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어떤 날의 존재는
몸에 남은 무게처럼
쉽게 떼어낼 수 없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피로,
반복되는 하루의 소모,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들.
이때 존재는
감내라는 얼굴을 갖는다.
살아 있음이
하나의 과정으로 느껴질 때,
오늘을 지나가는 일 자체가
이미 충분한 행위가 된다.
감내는 포기가 아니라
지속의 다른 이름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리를 떠나지 않는 선택.
그래서 나는
증명과 감내 사이에서
잠시 멈춘다.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도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결의도
잠시 내려놓는다.
존재는 어쩌면
해명하거나 투쟁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살아지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아침이 오고
해가 기울고
밤이 다시 돌아오듯,
의미를 주장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흐름 속에 머무는 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그 말은 위로라기보다
존재에 대한 하나의 인식이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완벽히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의 확인.
결국 존재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질문을 품은 채
계속 이어지는 상태일 것이다.
이유 없이 시작되었고
의미 없이도 지속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이미
존재를 하고 있다.
조용히,
설명 없이,
그리고 끝까지.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