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내게서모든수식어를거두어갈때, 비로소나는나의본문에도달한다
밤이 깊어지면 세계는 자연스럽게 숨을 낮춘다.
거리의 소음이 잦아들고,
하루를 지탱하던 말들이 하나둘 제 자리를 떠날 때,
방 안에는 내 호흡만 남는다.
들숨과 날숨 사이의 짧은 틈에서 나는 가끔 멈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온전한가.
침묵은 처음엔 비워진 방처럼 느껴진다.
가구가 빠져나간 뒤 남은 공기,
울림만 맴도는 공간. 마음도 그와 비슷해진다.
그러나 고요 속에 오래 머물다 보면 생각이 바뀐다.
그 빈자리는 사실
가장 많은 것들이 눌려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말로 옮겨지지 못한 감정, 이름 붙일 수 없던 생각,
기억의 잔향 같은 것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이다.
아침의 첫 순간을 떠올려본다.
눈을 뜨자마자 맞이하는,
아직 하루가 시작되기 전의 짧은 시간이다.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고,
어떤 역할도 걸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숨 쉬고 있다.
심장은 제 속도로 뛰고,
몸은 말없이 깨어난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설명은 언제나 뒤늦게 따라온다.
우리는 침묵을 쉽게 견디지 못한다.
고요 속에서는 가릴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성취도, 타인의 시선도,
익숙한 정체성의 외투도 힘을 잃는다.
남는 것은 꾸밈없는 나의 중심이다.
그것은 때로 연약해 보이고,
때로는 혼자 감당하기 벅찬 고독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소리를 찾는다.
음악을 틀고, 대화를 이어 붙이며,
분주함으로 틈을 메운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안도는 오래가지 않는다.
다시 고요가 돌아오면,
우리는 결국 자신과 마주 선다.
침묵을 견디는 일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도망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스스로를 밀어내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
그렇게 머물 때,
삶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화려하지 않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얼굴,
소리 없이 단단한 생의 표정이다.
이 지점에서 삶의 리듬도 조금씩 바뀐다.
말은 줄어들고, 침묵은 깊어진다.
그러나 이 고요는 단절이 아니다.
숨이 고르게 이어지는 상태에 가깝다.
무엇을 더 말할지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무엇을 보탤지보다 무엇을 덜어낼지를 생각하게 된다.
침묵은 비움을 통해
삶의 윤곽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점점 이렇게 믿게 된다.
침묵 속에서도 존재는 완전하다고.
그것은 환호 속에서 세워지는 구조물이 아니라,
수면 아래에서 이어지는 바다의 깊이와 닮아 있다.
겉으로는 잠잠해 보여도,
그 안에서는 생의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지속되고,
들리지 않아도 이어지는 맥박처럼.
잠들기 전,
다시 숨에 귀를 기울인다.
들숨과 날숨 사이,
어떤 이름도 역할도 붙지 않은 짧은 틈에서
나는 나를 만난다.
설명 이전의 나, 규정 이전의 나.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조용히 확신한다.
드러내지 않아도,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생각은 다시 침묵이 되어,
내 안에서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렇다면,벙어리장갑은 손가락들이 수다를 떨지 못하게 입을 막아 버려서 따뜻한 것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