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바람에흔들릴때살아있는것입니까, 아니면가만히서있을때살아있는것입니까
“나는 살고 있는가, 아니면 유지되고 있는가.”
이 문장을 가만히 되뇌면,
질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호흡에 가까워진다.
무엇인가를 재촉하려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를
조용히 확인하는 숨결처럼 느껴진다.
유지되는 삶은
멈추지 않기 위한 방식이다.
하루는 다음 하루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고,
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다독인다.
내어놓아야 할 말과 표정을 챙기고,
어긋나지 않도록 일상을 정리한다.
그 안에는 분명 안정이 있다.
그러나 그 안정이 길어질수록,
평온은 점차 숨이 얕아진다.
살아 있다는 감각보다는,
잘 버티고 있다는
느낌만이 남는다.
산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거나
거대한 사건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고요한 순간에도
내 삶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끼는 일에 가깝다.
불안이 스칠 때도 있지만,
그 흔들림을 지나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면
나는 아직 나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살아 있다는 감각은
늘 약간 불안정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불안정함 덕분에
나는 나로 남아 있다.
우리는 종종 유지되기를 선택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지금 손에 쥔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그 선택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유지가 습관이 되고 관성이 될 때,
삶은 반복되는 표면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하루가 사라져 있다.
살기와 유지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지 않다. 우
리는 유지하면서 살고,
살아가기 위해 유지한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 질문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지금 시간을 지나고 있는가,
아니면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하루가 끝날 무렵,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여운이 남아 있다면,
그날 나는
살아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런 감각도 남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조용히
유지되고 있었을 뿐이다.
이 질문을 마음 한쪽에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삶은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그 숨결 위에서,
나는 다시 내일을 향해 몸을 기울인다.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