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고 있는가, 아니면 유지되고 있는가

나무는바람에흔들릴때살아있는것입니까, 아니면가만히서있을때살아있는것입니까

by Henri

“나는 살고 있는가, 아니면 유지되고 있는가.”


이 문장을 가만히 되뇌면,

질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호흡에 가까워진다.

무엇인가를 재촉하려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를

조용히 확인하는 숨결처럼 느껴진다.


유지되는 삶은

멈추지 않기 위한 방식이다.

하루는 다음 하루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고,

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다독인다.

내어놓아야 할 말과 표정을 챙기고,

어긋나지 않도록 일상을 정리한다.

그 안에는 분명 안정이 있다.

그러나 그 안정이 길어질수록,

평온은 점차 숨이 얕아진다.

살아 있다는 감각보다는,

잘 버티고 있다는

느낌만이 남는다.


산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거나

거대한 사건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고요한 순간에도

내 삶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끼는 일에 가깝다.

불안이 스칠 때도 있지만,

그 흔들림을 지나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면

나는 아직 나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살아 있다는 감각은

늘 약간 불안정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불안정함 덕분에

나는 나로 남아 있다.


우리는 종종 유지되기를 선택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지금 손에 쥔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그 선택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유지가 습관이 되고 관성이 될 때,

삶은 반복되는 표면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하루가 사라져 있다.


살기와 유지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지 않다. 우

리는 유지하면서 살고,

살아가기 위해 유지한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 질문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지금 시간을 지나고 있는가,

아니면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하루가 끝날 무렵,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여운이 남아 있다면,

그날 나는

살아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런 감각도 남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조용히

유지되고 있었을 뿐이다.


이 질문을 마음 한쪽에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삶은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그 숨결 위에서,

나는 다시 내일을 향해 몸을 기울인다.


Henri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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