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누구의 허락을 받고 방 안으로 들어오는가
존재는 스스로를 정당화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생각은 자꾸 삶의 바깥으로 흐른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근거로 이 자리에 머물 수 있는지.
질문은 나를 향한 듯 보이지만,
실은 나를 가늠하려는 세상의 기준을 더듬고 있는지도 모른다.
숨을 가만히 고르면,
삶은 언제나 질문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유를 갖추기 전에도 심장은 뛰었고,
이름을 얻기 전에도 숨은 들고 났다.
창가에 스며드는 아침의 빛과
고요히 내려앉는 밤의 어둠에는
그 어떤 승인도 필요하지 않았다.
존재는 늘 그렇게, 설명 없이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 애쓴다.
무엇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쓸모 있는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를 헤아린다.
그 기준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다가도,
성과 하나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마음은 곧 흔들린다.
존재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들고 있던 이유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도 말이다.
정당화는 때로 삶을 지탱해 주는 장치가 된다.
하지만 그 장치에 오래 기대면 삶은 점점 숨이 막힌다.
설명이 삶을 앞지르는 순간,
하루는 살아지는 시간이 아니라 증명해야 할 과업이 된다.
반대로 이미 살아 있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이면,
질문의 방향은 자연스레 달라진다.
왜 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건너가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존재는 설명될수록 작아지고,
말이 멈출수록 오히려 넓어진다.
아무 이유 없이 피어나는 길가의 풀잎처럼,
대답을 요구하지 않고 이어지는 숨처럼,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우리가 할 일은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탕 위에 어떤 보폭으로 설 것인지를 살피는 일이다.
결국 존재는 스스로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여기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 고요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묻는다.
오늘의 나에게 필요한 것이 이유인지,
아니면 이 순간을 온전히 감각할 용기인지.
그렇게 묻는 동안에도 숨은 흐르고,
시간은 쌓여간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존재는 아무 말 없이도
이미 자기 몫의 빛을 내고 있다.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