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사라진뒤에도남는것이있다면,그것은나인가흔적인가

온기 있는 흔적

by Henri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무언가가 남는다면,

그것은 과연 ‘나’라는 존재일까,

아니면 내가 남기고 간 ‘흔적’ 일뿐일까.


이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죽음이라는 개념보다 먼저

깊고 고요한 침묵이 마음에 내려앉는다.

모든 언어가 효력을 잃은 뒤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잔향,

설명 이전에 먼저 도착하는 여운을 느낀다.


사람은 떠난 뒤에야

비로소 타인의 기억 속에서 다시 구성된다.

그러나 그 기억 속의 나는

언제나 하나의 형상으로 모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했던 목소리로 남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말없이 스쳐 간 그림자로 남는다.

그 모든 조각은 나를 닮았으나

그 어느 것도 나의 전부라 할 수는 없다.

결국 남는 것은 ‘나’라기보다

내가 머물렀던 자리의 온기와 공기라 여겨진다.


돌이켜보면

살아 있는 동안에도

나는 단 한순간도 고정된 적이 없다.

생각은 흐르고 마음은 끊임없이 변한다.

나는 매일 조금씩 사라지고

또 다른 나로 갱신된다.

그렇다면 애초에

‘완성된 나’라는 상태가 존재하기는 했을까?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된다.

아마도 남는 것은

존재의 핵심이 아니라

내가 성실히 통과해 온

삶의 방향과 궤적일 것이다.


흔적은 종종 가볍게 여겨지지만

실상 그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타인의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다.

함께 보낸 침묵의 시간이

의도치 않은 위로가 된다.

그 흔적들은 내 손을 떠나는 순간

타인의 삶 속에서

자기만의 호흡을 시작한다.

그때부터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소유가 아니다.


삶을 명상하듯 응시하다 보면

우리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살기보다

서로에게 스며들기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완전히 사라지는 존재도 없고

영원히 고정되어 남는 자아도 없다.

다만 스쳐간 마음들 사이에

미세한 떨림 하나를 남길 뿐.


그래서 사라진 뒤에 남을 것들에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나였던 것들이

조용히 풀려나

세계의 일부가 된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흩어짐이며,

그 흩어짐은 또 다른 방식의 머묾이라 사유한다.


이 고요한 순환 속에서

존재는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은 채

어떤 방식으로든

말없이 이어지고 있다.


Henri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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