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잃으면 나는 여전히 나인가

당신이깊은잠에들어이름조차잊었을 때, 당신의이름은어디에서밤을지내는가

by Henri

이름이라는 옷, 숨이라는 실체


이름을 잃으면 나는 어디에 머무는가.

이 질문을 조용히 품고 있으면

생각은 말보다 먼저 호흡으로 내려간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짧은 틈마다

나는 불렸다가 지워진다.

세상은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나는 여전히 숨을 쉰다.

그 간극에서 비로소 존재의 가장 얇은 층이 드러난다.


우리는 태어날 때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이 세계에 들어온다.

이름은 생의 첫 옷이자 작은 표지다.

그것을 입는 순간 나는 관계 속에 놓이고,

책임의 방향을 얻는다.

그러나 그 옷에 오래 몸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옷의 모양을 나라고 착각한다.

불리는 방식이 곧 나의 전부인 듯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그 옷을 벗으면 무엇이 남을까.

잠시 눈을 감고 이름과 역할,

타인의 시선을 내려놓아 본다.

남는 것은 고요 속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감각이다.

심장은 제 리듬으로 시간을 두드리고,

숨결은 몸 안의 빈 곳을 조용히 채운다.

생각이 멎는 자리에서

오히려 존재는 더 또렷해진다.

설명되지 않기에,

살아 있음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 순간 알게 된다.

이름은 나를 가리키는 표식일 뿐,

나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표식이 사라져도

그 안에 있던 실체는 남는다.

불필요한 덧붙임을 벗겨내면,

나는 더 단순한 모습으로 선다.

보여지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느끼며 하루를 건너는 존재로.


깊은 고요 속에서는

아주 오래된 ‘나’가 고개를 든다.

아직 불리지 않았고,

비교되거나 증명될 필요도 없던 상태의 나.

그 나는 성취를 재촉하지 않고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낸다.

이상하게도 그 단순함 속에서

마음은 가장 가득 찬다.


그러나 눈을 뜨면 나는

다시 이름을 입고 세상으로 나간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선택에 가깝다.

이름은 나를 묶는 사슬이 아니라,

세계와 이어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는 분명히 안다.

통로는 건너기 위한 것이지,

머무르기 위한 자리는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름과 함께 살되,

때때로 그 이름을 내려놓고

숨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지금 여기에서 숨 쉬는 이 존재는 누구인가.”

그 대답 없는 여백 속에서,

나는 잠시 가장 나다운 상태로 머문다.

이름 없이도 충분히 살아 있는 채로,

고요하지만 분명하게.


Henri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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