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정신이거주하는'집'이아니라, 세계가나라는존재로번역되는단하나뿐인'사건
태초에 말이 태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가장 먼저 있었던 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따스한 숨결,
그 숨결을 타고 오르는 몸의 고요한 박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우리는 몸을 가벼운 그릇으로,
영혼이 잠시 머무는 초라한 방으로,
이성이 명령을 내리는 차가운 기계로 여겨왔다.
그러나 몸은 그저 담는 그릇이 아니다.
스스로 빛을 품은,
끝없이 펼쳐지는 사유의 은하수다.
세상을 감각한다는 것은
멀리서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나의 살과 세계의 살이 서로 스며들며,
미세한 떨림으로 서로를 새기는 일이다.
손끝이 나무 책상의 거친 결을 스치면,
그곳에는 질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피부가 그 결을 받아들이는 순간,
동시에 책상이 나의 피부를 어루만지는 감촉이 함께 태어난다.
접촉은 언제나 쌍방의 속삭임,
서로를 향해 내민 숨의 교차다.
몸은 ‘나’와 ‘저것’의 선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그 모호한 경계선 위에,
몸은 이미 서 있다.
의지는 머릿속에서 끝나지 않는다.
계단을 오를 때 무게가 한쪽 발바닥으로 쏠리며 생기는 미세한 흔들림,
피아노 건반 위를 미끄러지는 손가락 끝의 리듬,
그 안에서야 비로소 의지가 살이 되고 숨이 된다.
몸은 과거를 습관의 온기로 간직하고,
미래를 시선이 닿는 먼 지점의 예감으로 미리 만져본다.
현재라는 이 순간 위에,
몸은 끊임없이 자신의 흔적을 새기며,
새겨지며 살아간다.
그래서 몸을 안다는 것은
껍질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안쪽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뜨거운 통로를 더듬는 일이다.
타인의 젖은 눈동자 앞에서 가슴이 저미는 것은,
우리가 같은 살의 직조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숲의 축축한 향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 때,
내면과 바깥의 경계는 잠시 녹아내린다.
그 순간 몸은 더 이상 벽이 아니라,
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살아 숨 쉬는 문이 된다.
신체의 현상학이란 결국 이런 자각이다.
우리는 우주 속에 홀로 떠 있는 파편이 아니라,
몸이라는 부드러운 문을 통해
세계와 끝없이 맞닿고, 속삭이고, 응답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임을 깨닫는 일.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숨의 떨림 속에서,
존재는 이미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완성되어 있다.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