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이 남긴 잔열
가만히 숨을 들이마신다.
생은 앞으로 흐르지만, 날숨 끝에 짧은 멈춤이 깃든다.
그 찰나의 공백에서 죽음을 마주한다.
그것은 종착역이 아니라,
다음 문장을 깊게 울리는 여백이다.
우리는 빈자리를 두려워하지만,
그 덕에 삶의 리듬이 생긴다.
죽음은 그림자처럼 곁에 붙어 걷는다.
빛이 있기에 드러나는 그림자처럼,
죽음은 삶의 실재를 증명한다.
끝이 예정되어 있기에 시작이 선명하고,
사라짐이 필연이기에 만남이 빛난다.
무한한 시간이면 사랑을 미루고 용서를 연기할 테지만,
유한함은 하루를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만든다.
이는 권태를 몰아내는 장치다.
유한함은 선택을 요구한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기에 화려함이 사라지고,
본질만 남는다.
오래 바라본 얼굴, 작은 약속, 이름 없는 성실.
죽음은 삶의 표면을 걷어내 안쪽 온도를 드러낸다.
그것은 문턱으로, 삶의 방향을 가늠하게 하고
무심한 풍경 앞에 멈추게 한다.
그 선이 삶을 형태 있는 장면으로 만든다.
때로 죽음은 예고 없이 무너뜨린다.
상실의 공백은 시리지만,
그 빈자리는 삶을 다시 담는 그릇이 된다.
우리는 더 천천히 숨 쉬고,
조심스럽게 사랑하며,
오래 곁을 지킨다.
죽음은 파도이자 조류다.
그 미학은 어둠을 장식하는 게 아니라
빛을 재배치하는 기술
삶을 응축해 순간을 농축된 색으로 물들인다.
사유의 끝에서 속삭인다.
죽음은 문이 아니라 창이다.
그 앞에서 묻는다.
얼마나 오래 머물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존재할 것인가를.
사라짐은 소멸이 아니다.
빛이 지나간 따뜻한 잔열,
그 온기 위에서 우리는 더 분명하게 산다.
이 순간 어리섞은 물음을 다시 해본다.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에서는 왜 아무도 ‘오늘’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까”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