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원초적 질문의 복원

유년의 호흡, 존재의 미세한 리듬

by Henri


나는 때때로 의식의 깊은 계단을 내려간다.

발소리마저 사라지는 그곳,

언어보다 숨결이 먼저 도착하던 시간의 방.

내게 유년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내면의 저층에서

낮은 온도로 맥동하는 실존의 감각이다.

그곳에서 세계는 아직 ‘이름’으로 굳어지지 않았고,

사물들은 막 태어난 빛을 머금은 채 스스로 빛났다.


그 시절 질문들은 투명하고 가벼웠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별은 왜 추락하지 않는가.”

“마음은 어째서 예고 없이 고요해지는가.”

나는 답을 구하지 않았다.

묻는 행위 자체가 호흡이었고,

존재가 스스로 드러나는 방식이었다.

질문은 해결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나와 세계 사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살아 있음을 깨웠다.

그 무구한 의문 속에

묻는 존재의 원형이 숨 쉬었다.


성장은 언어를 얻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침묵의 영토를 잃는 일이다.

설명은 정교해지고 정의는 단단해진다.

그러나 문장 사이의 미세한 떨림은 옅어진다.

삶은 효율의 이정표가 되고,

시간은 쪼개어 소비되는 단위가 된다.

질문은 ‘왜’에서 ‘어떻게’로,

‘어디로’에서 ‘얼마나 빨리’로 바뀐다.

세계는 편리해졌지만,

존재를 감싸던 고요한 경외는 멀어졌다.


유년의 기억 복원은 과거에 머무는 게 아니다.

그것은 지금,

숨의 깊이를 되찾는 연습이다.

익숙한 풍경 앞에서 반응을 늦추고,

사고의 바퀴를 멈추는 일.

그 틈에서 낯섦이 떠오른다.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세계가 아직 열린 신호다.

이제 나는 “이 삶은 어디로 가는가” 대신

“나는 지금 어떤 감각 위에 서 있는가”라고 묻는다.

지면의 감촉, 숨의 무게, 빛의 입자.

이 감각들 속에서

잊힌 질문이 깨어난다.

삶은 목적지가 아니라,

매 순간 새로 펼쳐지는 장면이다.


유년의 질문은 느리다.

결론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림의 언어다.

기다림 속에서 생각은 가라앉고,

감각은 떠오른다.

그 고요에서 나는 묻는다.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

지금 무엇으로 숨 쉬는가를. 우

리가 되찾고 싶은 것은

어린 시절 사물이 아니다.

세계를 처음 대면하던 태도,

가능성을 품던 유연함이다.

그 자세로 하루를 열 수 있다면,

삶은 반복이 아니라 새 시작의 문이 된다.

유년은 닫힌 계절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 돌아갈 내면의 방향이다.

숨을 고르고, 시선을 낮추고,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그 방향은 드러난다.

그곳에서 질문은 호흡이 되고,

삶은 살아 있는 리듬으로 흐른다.


이 순간 어리섞은 물음을 다시 해본다.

"이름이 지워진 숲에서 우리는 길을 잃은 것인가, 아니면 비로소 숲을 만난 것인가"


Henri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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