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서울리는가장큰목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내가가장모르는타인의목소리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켜 보자.
들숨과 날숨 사이의 고요한 틈에서 한 질문이 떠오른다.
내 안을 흔드는 이 욕망은 어디서 불어오는가?
우리는 욕망을 가장 사적인 영역으로 여긴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그 안에는 타인의 기척과 시대의 퇴적이 스며 있다.
욕망은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
관계와 사회의 공기 속에서 자라난다.
쇼윈도와 화면 속 성공 서사가 속삭인다.
무엇을 욕망해야 안전한지,
무엇을 쥐어야 안도할 수 있는지.
우리는 외부의 리듬을 자신의 심장 소리로 착각한다.
욕망은 내 안에서 뛰는 듯하지만,
실은 수많은 발걸음의 공명이다.
그러나 욕망을 전부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성급하다.
같은 풍경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빛에 끌린다.
각자의 결핍, 상처, 유년의 기억이 욕망의 각도를 비튼다.
욕망은 사회의 언어로 말하지만, 개인의 체온으로 떤다.
내가 경계하는 것은 욕망이 투명해지는 순간이다.
너무 익숙해 의심하지 않을 때, 위기가 시작된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라는 구호는 순풍처럼 느껴지지만,
곧 역풍으로 바뀐다.
속도에 취해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우리는 멈춰 서서 욕망을 응시해야 한다.
억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리를 두기 위해서다.
욕망을 절대 명령이 아닌 스쳐 가는 파동으로 볼 때,
질문의 초점이 바뀐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에서 “왜 지금 이것이 나를 부르는가”로.
그 질문 속 침묵에서 미세한 자유를 느낀다.
욕망을 거세할 수 없지만,
그것이 삶을 독점하도록 내버려 둘 필요도 없다.
욕망과 나란히 걷되, 끌려가지 않는 법을 배우면
삶의 보폭은 느려지더라도 깊이는 깊어진다.
결국 이 물음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욕망의 기원을 모두 밝히지 못하더라도,
그 물길을 어디로 흘려보낼지는 우리의 몫이다.
성숙이란 욕망을 버리는 게 아니다.
들끓는 욕망 곁에 고요히 앉아,
그 민낯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다.
그때 욕망은 나를 태우는 불꽃이 아니라,
어둠 속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그 빛에 기대어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진실하게 자신을 향해 나아간다.
이 순간 어리섞은 물음을 다시 해본다.
"내 인생의 식탁에, 왜 내가 주문하지 않은 요리가 계속 나오는 걸까"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