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안다는 것은, 곧 삶을 안다는 것인가

모든불꽃은자신의소멸을담보로타오른다. 영원히타오르는것은오직차가운가짜들뿐이다

by Henri

죽음을 안다는 것은 삶을 아는 것인가

이 질문을 가슴에 오래 올려두면,

그것은 단단한 명제라기보다 나직한 숨결처럼 다가온다.

죽음을 사유한다는 것은 삶의 끝을 상상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얇고 위태로운 빛 위에 놓여 있는지를 천천히 자각하는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

다만 그 주변을 맴돌 뿐이다.

누군가의 부재 앞에 서고, 식어버린 체온을 기억하며,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시간을 되짚는다.

죽음은 타자로 보이지만,

그것을 떠올리는 순간 삶은 더 깊이 드러난다.

배경처럼 흘러가던 일상이 미세한 결을 보인다.

볕이 머물던 자리, 스친 목소리, 무심한 문장 하나까지.


인간은 끝을 예감하기에 ‘현재’에 단단히 설 수 있다.

시간이 무한하다면 오늘은 흩어질 테지만,

멈춤을 직시할 때 우리는 묻게 된다.

무엇을 붙들고, 남기며, 지킬 것인가.


죽음을 응시하면 삶은 단순해진다.

허명은 물러나고, 미루어 둔 진심들이 앞으로 나온다.

건네지 못한 말, 바라보지 못한 얼굴.

죽음은 삶을 지우는 어둠이 아니라,

윤곽을 드러내는 깊은 음영이다.

빛은 어둠을 통해 농도를 드러낸다.


물론 죽음을 안다고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공포로 붙들면 삶은 위축되고,

관념으로 밀면 현실에서 멀어진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끝이 있다는 사실은 삶을 무너뜨리지 않고,

가볍게 흘려보낼 수 없게 만든다.


죽음은 삶의 적대자가 아니라,

연약하고 찬란한 삶을 증명하는 그림자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의 길이가 아닌 깊이를 배운다.


결국 죽음을 안다는 것은 삶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더 천천히 만지게 되는 일이다.

하루를 오래 바라보고,

타인의 목소리를 깊이 듣게 되는 일.

그것이면 충분하다.

죽음을 사유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더 고요하고 분명하게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어리섞은 물음을 다시 해본다.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우리 삶에서 완전히 지워버린다면, 우리는 매일 대낮처럼 환하고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을까”


Henri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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