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로 당일치기 여행을 하는 아침, 포르투의 버스 터미널에 일찍 도착하니 이런 자판기도 보였다. 이런 자판기 있으면 좋겠다. 저렇게 브랜드별로 다양한 게 아니더라도, 사슴 먹이주기 체험분처럼 작게 담은 사료 샘플 같은 거라던가를 자판기로 사서 넣고 다니다 굶주린 길고양이를 만나면 좀 보시한다던가.......
떠나기 전 카푸치노 한 잔.
안경은 레스토랑에 두고 왔다 다시 찾은 적이 있다. 유독 분실이 잦았던 이번 여행에서 생존한 물건. 분실의 항목엔 300유로 정도의 돈과 두 개의 신용카드도 포함된다. 여행 중 총 세 개의 카드를 가져갔는데, 그중 살아남았던 하나는 어제 편의점에서 결제한 이후 집에 오는 길에 사라져 있었다. 이로써 여행 중 카드 세 개 모두 분실이라는 그랜드 트라인을 완성. 그중 어제 없어진 카드는 이제 카드도 지나치게 많은 김에 재발급하지 않으려 한다.
파티마에 내리자 이 도시의 상징이 곧장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파티마는 원래 여행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다.
리스본, 라구스, 포르투, 신트라, 오비두스, 처음 계획은 이랬는데 파티마를 급조해 넣었다.
오비두스는 파티마랑 가깝지만 교통이 썩 편리한 걸로 되어 있지 않아, 좀 오래 머무는 리스본이나 포르투에 머물 때 하루를 떼어 파티마에 다녀오면 되었다.
파티마를 가게 된 건, 떠나기 전 이틀 연속 같은 분위기의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보통 첫 꿈을 꾸고 잊었다가 두 번째 꿈을 꾸고 나서 첫 꿈조차 기억나게 되어 있다. 바로 그랬다. 두 번째 꿈에 성화를 보기도 하고, 평소의 내 꿈같지 않은 상징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떠나기 전날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집어먹으며, "포르투갈에 종교 관련하여 뭐가 있지?"라고 물었고 동행인은 "파티마가 있지."라고 답했다.
이전까지 파티마란 도시가 포르투갈에 있는지도 몰랐고 거기서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도 전혀 몰랐다. 막연히 아이들에게 성모가 나타났다는 정도.
그런데 그게 좀 규모가 다른 수준의 기적으로 이어졌다는 것까지는 전혀 몰랐다. 광장에 모인 7만 명에게 신비 현상이 한꺼번에 목도되었다니, 집단 환각에 빠지거나 꾸며내기로 모두가 동의한 게 아니고서야 그것은 정말 기적이었을 것이다.
파티마 터미널을 빠져나와 사람들이 주로 걷는 방향으로 조금 걸으니 저런 데가 나왔다. 저기가 바로 7만 명이 모였었다는 거긴 가?
이 날 하늘은 온통 청명했다. 공기, 바람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모든 게 눈부신 날.
이런 원형 경기장 같은 성당도 처음이려니와, 족히 7만 명은 들어가고도 남아 보였다.
이날 구름들은 신비로웠다.
기념품점들엔 가톨릭 성물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파티마 손톱깎이서부터 파티마 피젯 스피너에 파티마 달마대사와 포대화상까지 다양했다.
뭐든 여기 가져와 파티마의 후광이 입혀지면 그 무엇이라도 팔리지 않을 수 없다는 듯 갖은 물건들이 즐비했다.
이렇게 심플한 예수상은 처음이다.
그리고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도 무릎으로 기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미사에서 나와 늦기 전에 세 아이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다.
성모를 여러 차례 만났다는 세 아이.
그중 루치아의 집.
아이들에게 천사가 나타났었다는 장소.
돌아온 광장엔 아까 미사 보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다.
여기 초 봉헌은 캠프파이어 수준이라더니 과연 그러했다. 여기 초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작은 초가 아녔다. 팔뚝 발뚝 모양 초도 있었고 사람 크기의 초도 많았다.
지옥을 방불케 하는 유황빛으로 타오른다.
사람 키높이의 초들
제단 쪽에서 바라본 광장.
기념품 사고서 늦기 전에 출발했다.
기념품에 적힌 걸 보고서야 올해가 성모 발현 100주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장대 같은 긴 구름이 따라왔다.
점점 더 옆으로 긴 모양이 되어가면서.
이 하루의 남은 구름과 황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