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흔한 금기 영역의 생존자들

대체 언제까지 묵인될 것인가?

by 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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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쓰려는 글은 조회 수도 공감 수도 적을 것이다. 불편하니까.


친족 성폭행, 마주 대하기 불편하니까 외면이나 부정으로 덮으며 지나가기에는, 계속 발생해왔고, 그냥 두면 계속 벌어질 일이다.


그런데 이 악독한 현실이, 단지 소수의 일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다수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핵심은, 이런 불행으로부터 멀리 비껴서 있는, 요행이 이런 일들의 침범을 받지 않는 보통의 사람들에게서는 바로 '저런 끔찍한'이라는 취급을 당하는 이 일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보편적"이라는 데 있다.



가족과 사회 내에서 '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딸린 존재고, 그저 나머지 구성원들의 필요와 편의에 따라 있다가 없다가 하는, 실은 살아가고 있는지나 헷갈리는 모호한 위상의 존재들이다. 그게 현실이다.


저런 일이 일어날 때, 피해자인 딸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가족이나 사회에 드물거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기본 생존권을 찾는 일을 오로지 스스로 해내거나, 그럴 용기가 없으면 침묵해야 하는 일.


그러니까 친족 성폭력은 아주 보편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참으로 버젓하기 그지없는 사각지대인 것이다. 가족과 사회 구조 속에선 가해자의 편의와 명분만이 우선되곤 한다.




받아들이기 참으로 싫은 현실이지만, 아버지, 큰아버지, 오빠, 사촌 오빠, 이웃 남자, 학교 선생님, 종교 지도자 등 모든 남성에 대하여, 잠재적 성폭력 가능자 취급해야 하는 게 맞는 듯하다. 전적이든 부분적이든.


잠재적으로 뭇 짐승들을 품은 존재들을 같은 인간으로 여기며 살고 싶어 자칫 경계를 늦추다가는, 이 사회의 빗나간 성욕과 그로 인한 모든 심리적 짐들을 딸들이 걸머지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이 딸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남들이 '저런 일'이라 부르는 일을 겪고도 살아나가는 이들은 과연 생존자라는 어휘로 불릴 만도 하다. 방관과 외면이, 사건의 경시나 부정, 그리고 무난하거나 어긋난 뒤처리 등을 합리화시키고 있다.


그 구성원들을 존중하고 배려해주지 못하는 가족이나 사회는 구조적으로 재편되어야 하고, 약자에 대해 최소한 여러 가지 보호 장치를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 가족이 지금의 형태대로 악착같이 존속해야 할 이유란 뭔가? 있을까?



또한 아주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친족 성폭력이라는 것은 거의 곧장 아동 청소년 폭행이라는 점이다. 여자인 동시에 그보다는 먼저 어린이인 것이다.



아무튼 이 문제는 가족 이기심, 인간 이기심의 최첨단의 구역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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