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로만 이루어진 숫자들의 날이다.
램 카페 쿠폰을 벌써 7개를 채워 오늘은 여기 커피 중 가장 비싼 과테말라 안티구아를 주문했다. 이 공짜 커피와 함께 건포도 스콘을 먹을 작정인데 이 작은 다과상만으로도 아일랜드에서의 애프터눈 티가 떠올랐다. 굳이 3단으로 달디 단 과자와 케이크를 쌓아 올리지 않으면 어떤가. 이 울퉁불퉁하면서도, 딱 지금 이 시각의 빛에 걸맞은 스콘과 촉촉한 잼 그리고 부드러운 크림이면 내겐 비할 나위가 없다. 그것은 먹기에 앞서 그리고픈 충동을 부른다. 어제 산 드로잉 북에 그려 넣을 참이다.
스콘 그리는 동안 이어폰 속 BGM-케미컬 브라더스의 Dig Your Own Hole......
오늘도 가뜩이나 외출은 늘어졌다. 블로그에 글 하나 쓰고, 난데없이 튀김 팬에 기름을 붓고 당귀 튀김을 해 먹고 빨래를 돌린 다음, 그저께 홈페이지에서 반품 신청을 했으나 여태껏 오지 않는 택배회사를 의아해하며 쇼핑몰 측과 통화까지, 자질구레한 일들이 내 황금시간과 백금 햇빛을 빼앗아가 버렸다. 결과 지금은 다소 미지근해진 은빛 햇살만을 받고 있다. 이나마 감지덕지. 그놈의 택배 반품은 홈페이지 반품 신청만이 전부가 아니어서 별도로 택배회사와 개별 업체에 각각 따로 연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품 신청 과정이 간편한 소셜 커머스가 왜 인기인지 알겠다.
이렇게 시간을 버리고선 빨래들을 투덜거리며 널은 다음, 평소대로라면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되는 ‘옷 입기’, 정확히는 ‘카페 의상 선정’에 5분밖에 내어주지 않았다. 보통 30분은 걸리는 일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예전에 무난하게 소화했던 코디를 반복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하여간 오면서 생각했다. 거의 야심이라곤 가져본 적 없는 나의 최소한의 문학적 야심에 대해.
일단 글쓰기 본능을 출구로 삼겠다고 다짐한 것이 스스로에게 기정사실일진대, 결론은 분명하다. 이 장(場)에서도 역시 조금이라도 남과 비슷한 방식을 취하려 한다면 결국 남만도 못한 채 자기를 잃게 되리라는 것이다. 나는 예술을, 심혼 즉 가장 안의 것, 여간 까다롭지 않아 좀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그 어떤 귀한 것이 자신을 드러내게 만드는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어떤 메시지를 담던지 기본은 그것이라 늘 여겨왔다.
그런 개인적 영역의 것을 무엇하러 예술이랍시고 유통시키냐는 반문이 따를지도 모른다. 내 개념에,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은 분리되지 않는다. 내가 나의 정치적 견해를 이름표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해도, 내가 일상을 느끼는 방식을 곰곰이 살펴보면 거기에 어느 정도 내 색깔이 드러난다.
그리고 표현과 말들은 우회를 미덕으로 삼는 것도 좋다. 사람들은 섣부른 공격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말은 오해의 근원’이라는 현자 생텍쥐페리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말꼬리 잡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려거든 생텍쥐페리 인용 금지!
예술. 심혼. 그저 가장 나다운 무언가를 하면 족하다. 가족의 흥망성쇠, 사회의 부조리, 인간의 본성 등을 탐구하는 게 아주 못할 바는 아니지만, 정확히 내 영역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나는, 흔히들 생각하는 크고 작음이 전도된 세계에 경도된다. 그것을 실제 내 세계라 부른다. 현실적 대사건이 내게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할 때도 많고 반대로 지나치게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어떤 것에 내 존재 전체가 흔들리기도 한다.
랭보는 이런 시를 남겼다.
섬세함 때문에
나는 나의 삶을 잃었다.
나는 잡다한 삶 자체에 깃든 부조리와 아이러니에 관심이 머문다. 하찮고 사소한 것들로 가득한 세계 됨을 그려 보이는 것, 내 글쓰기 의욕은 거기 머문다. 당분간은 내 고유의 구덩이(My Own Hole)를 팔 것이다.
이제 짧은 티파티 끝. 서둘러 가야 할 곳이 있어서다. Au revoir. A de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