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 불만인 것들의 목록에는 분명히 ‘명민하지 못한 외출 준비’도 포함될 것이다. 물론 이 외의 다른 모든 시간도 명민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자고 일어나서 두세 시간 정도의 미적거림만 어떻게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어도 내 삶이 달라지리라 여기곤 한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지각생. 이것이 일상 전반의 나의 모습일진대, 이렇게 되는 데에는 번번이 빠져드는 늪들이 있다. 이 웅덩이만 비껴갈 수 있대도, ‘사랑의 블랙홀’에서처럼 갖은 유용한 일들을 해치움으로써, 원하는 만큼 유능해질지도 모른다.
늪...... 아까는 두 가지 정도의 일에 골몰해 있었다. 이 삼 주 전 거실의 장 스탠드가 고장 났는데, 우리의 온갖 번잡한 일들이 그러하듯,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조명기구를 검색해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겨우 어느 날 밤 사이트를 훑어서 골라낸 것은, 천장으로부터 줄을 내려뜨려 사용하는 램프였다. 그 사이트에 이르길, 이 램프에는 ‘에디슨 전구’가 가장 예쁘게 어울린다고 쓰여 있었다. 그 만 원짜리 전구도 같이 주문했다. 값을 들인 보람이 있게 그것은 아름다웠지만, 다만 밝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에디슨 전구’를 켜놓고 음미하던 게 어제저녁의 일이었다. 그 고즈넉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아서 전구의 ‘퍽’하는 단말마와 함께 멸절하였다. “뭐 이런 허접한! 정말 실망스럽군.”라고 뇌까리며 에디슨을 몰아낸 자리에 LED 전구를 껴 넣었다. 그것은 밝기의 문제까지 해결해주어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단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한 에디슨 전구에 대한 분노는 가시지 않았다.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나자 그 분노는 숨을 거둔 전구와 함께 순장되기는커녕 오히려 죽은 불더미에서 다시 살아나 심술까지를 장착하고 다시 씩씩거렸다. 이미 택배 상자를 버려버려 그 만 원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전화라도 걸어 따지고 싶어 지는 것이었다. 환불과는 상관없이 단지, “어떻게, 이쁘다고 적혀 있어 일부러 주문한 전구가 반나절도 못 버티다뇨!”라고 내뿜고 싶은 게 전부였다. “원칙상 환불은 불가하고요.”소리를 예상하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이 램프를 샀던 샵의 전화번호를 끝내 발견치 못하여, 집착을 밀고 나가 작은 눈덩이로라도 뭉쳐 던지려는 나의 욕망은 그쯤에서 제지되어야만 했다. 복수의 일갈을 위한 사이트에서의 서성임, 이것이 내 외출이 늦어진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역시 택배로 온 바지들의 문제였다. 그것들은 지금은 맞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살이 찌는 날에는 곧장 맞지 않게 될 모양새인 데다, 화면에서 본 바로 그 핏이 나오지 않아 불만스러웠다. 곧장 재포장하여 반품 신청하면 그만이거늘, 나는 또 화면을 열어 마우스를 움직여가며 약간의 탐구까지를 했다. 결론은, 내가 원하는 핏이 아낌없이 살아나려면, 허리가 불과 24인치인 그 옷의 모델만큼 말라야 한다는 것이다. 모델이 아닌 사람이 입었을 땐 아주 다른 옷처럼 보일 것이 자명했다. 다시는 이 모델 핏에 낚이지 않으리라 결심하기까지는 두세 번의 입었다 벗음, 다각도로 거울에 비추어 보기, 단점과 장점의 충분한 저울질 등의 긴 과정이 뒤따랐다.
바지와 씨름하는 동안, 비 온 뒤 먹구름 속에서 재활용되어 나온 듯한 태양 빛이 다시 비추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스러지기 전 두어 시간을 누리려면 최소한 세 시 이전에는 나가야 하는데, 이것을 맞추려면 내 거처의 도처에서 온갖 삐걱이는 모서리에 부딪쳐 덜컹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늘 그렇다. 고양이는 밥을 먹기 전후로 여러 번 토하고 울어대고, 구토의 흔적을 닦아내다 갑자기 깨달은 듯 물도 새것으로 갈아주고, 마른 양말들을 걷고, 외출 후 돌아와 먹을 반찬을 만들어 놓는 동안 다소 길어진 손톱에 낀 배추의 흙이 거슬려서는 신경질 내며 손톱을 깎고 등등, 이런 산만함에 밀려 외출은 항상 실제로는 ‘탈출’이 된다.
택배나 고장의 문제가 아니라도, 하필이면 그 날 걸치려는 액세서리가 갑자기 실종되어, 온 가방과 옷을 뒤집어엎어 가며 인디애나 존스나 성배 찾기와도 같은 과정에 몰두하거나, 어울리는 상하의 와 외내의를 매칭 하느라 종이 인형 옷 입히기 같은 행위를 반복하거나 -인간의 부피를 가진 내가 종이처럼 얄따랗지 않다는 점이 늘 문제다. - 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그러고도 원하는 아귀가 나오지 않을 경우, 나는 현관문을 거칠게 닫으며 엘리베이터 -그것도 건물 꼭대기부터 인내심 있게 찬찬히 내려오는 - 앞에 서서 이렇게 내뿜고야 만다. “남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